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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자 May 07. 2024

[삼체] 2부: 암흑의 숲을 읽고 나서

의심의 사슬

#. 스포일러가 가득한 후기이니 참고 바랍니다.











 도저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문명 간의 미래는 정말로 [삼체] 2부에서 예견한 대로 단 한 가지의 절망적인 가능성만으로 정해져 있을까.


 의심의 사슬.

 기술폭발.


 언제라도 기술폭발에 의한 경이로운 속도의 기술 발전으로 우리 문명의 수준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는 외계 문명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런 외계 문명에 대해 신뢰를 가지는 것이 본질적으로 아예 불가능하다면, 외계 문명은 우리 문명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뿐이다. 그건 외계 문명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향한 잠재적인 위협 속에서 의심의 사슬은 커져만 가고 결국에는 둘 중 하나는 상대방에 의한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삼체]에서 제시한 이론이 맞다면 인류가 외계 문명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건 행운이다. 그리고 외계 문명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인류가 무사히 번성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외계 문명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결론은 어렸을 때부터 공상과학을 좋아했고 첨단기술의 발전이 진행되면서 만들어지는 장밋빛 미래를 상상했던 나에게는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하면서 가슴이 착잡해지는 결론이다.


 그래서 [삼체] 2부에서 내려진 결론에 항변을 해보고 싶어졌다.

 [삼체] 2부의 절망적인 결론에는 한 가지 가정이 존재한다.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의심의 사슬. 우리와 외계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재 속에서는 서로에 대한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나갈 수밖에 없다.


 정말로 외계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할까?

 [삼체] 2부의 마지막 장에서 삼체 문명은 지구로 향하는 중이던 함대의 방향을 마지못해 반대로 돌린다.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해 방향을 돌리게 되면서 삼체 함대는 항해를 지속할 연료가 부족해지게 되고 다시 모행성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인류는 표류 중인 삼체 함대를 돕기로 하는 대신 도움을 주기 위한 관련 기술과 기초 물리학의 발전을 허용해 주는 것을 협상 카드로 쓰려고 한다. 2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다음의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는다.


 인류의 협상은 성공했을까? 성공했다면 인류와 삼체 문명 간의 관계는 어떻게 지속되고 있을까? 서로에 대한 의심의 사슬이 여전히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다면 삼체 함대가 방향을 돌린 것은 그저 잠깐의 휴전을 의미할 뿐이고 언제라도 다시 인류와 삼체 문명 간의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것일까?


 혹시라도 문명 간의 협상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생기게 되고, 두 문명이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도움을 주기도 받기도 하며 공존하는 방향으로 관계가 진전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삼체] 2부의 우주사회학 이론에서 제시한 2번째 공리대로 우주의 자원이 유한하고 그것이 기술폭발에 의해 생각보다도 빨리 소모되고 있는 중이라면, 두 문명이 당분간은 공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더라도 언젠가는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때가 올 수밖에 없다는 슬픈 생각도 든다.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더라도 어쨌든 우리와 외계 문명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유한한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마지막을 함께 감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 수밖에 없다.








 더욱 슬프게도 [삼체] 2부의 슬픈 결론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외계 문명이 아니더라도 적용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삼체 함대를 피해 도피하던 '우주선 지구' 문명의 몇 안 되는 함대들도 한정된 자원 속에서 서로를 향해 의심의 사슬을 팽팽히 당기던 끝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함대들의 구성원은 외계가 아닌 같은 문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지만, 그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아니었지만, 끝끝내 서로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굳이 '우주선 지구'와 같은 극단적인 환경 속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주변에서는 끝내 서로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위협과 불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가기만 하는, 사람들 간에 형성된 의심의 사슬을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착잡하다. 우리들 간에도, 같은 지구에서 태어난 사람들 간에도,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우리들 간에는 [삼체]에서 제시한 우주사회학 이론의 슬픈 결론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리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 서로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한정된 자원으로 구성된 유한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절망적인 미래가 찾아올 수밖에 없더라도 함께 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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