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얼굴을 가진 어머니

by 정희

내가 쓴 글을 읽다 보니 어머니에 대한 글을 참 많이 썼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 것 같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 본다.


내 글에서 어머니는, 새로 사준 고급 빌로도 셔츠를 망가뜨렸다고 야단치면서도 결국 꿰매 주던 어머니, 동생들의 잘못을 맏이인 나에게 책임 지우던 야속한 어머니였다. 또한 어머니의 기대가 무거워 수영을 잘 못하면서도 웬만큼은 따라간다고 거짓말을 하게 만들던 어머니이기도 했다.

실망시켜 드리기 싫어서였지만, 그 기대는 내 안에 타인의 요구에 반드시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자리 잡았다.


그 강박은 오래도록 내 삶을 따라다녔다. 덕분에 '참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면, 내가 뭔가 잘못했거나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먼저 받아들였다. 시어머니가 음식을 적게 만들었다고 하면 내가 인색한 사람이라 여기고 다음엔 넉넉하게 준비했다. 그러자 이번엔 낭비가 심하다고 하셨다. 그때도 나는 그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시어머니는 그냥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거였다. 정답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했고, 이유 모를 불편함만 마음 한편에 쌓아두었다.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며 자의식이 짙어졌고, 자연스럽게 내 생각의 뿌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깊은 곳에 어머니의 기대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를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였다. 어느 한 사건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세월이 쌓이면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 어머니는 맏이란 그렇게 키워야 한다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으셨을 것이다.


원망의 앙금이 걷히고 나니, 비로소 어머니의 다른 얼굴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동대문 시장에서 하루종일 신발을 팔며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 억척스러운 얼굴.

밤새도록 여동생과 같이 김장 무를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썰던 어머니.

추운 겨울밤마다 뜨거운 물을 받아 우리 형제들을 씻기던 손.

귀가 어두워지고서도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자리를 지키시던 뒷모습.

내 머리 모양을 놀리며 웃으시던 눈빛,

언제나 성까지 붙여 내 이름을 부르시던 목소리,

화초를 매일 들여다보시던 조용한 손길.


어머니의 얼굴은 정말이지 천 개가 넘는 듯하다. 때로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가, 어느 날은 송곳 같은 말로 마음을 후벼 파는 서운한 타인이 되기도 했다.

동생의 잘못까지 내 어깨에 얹어두고 돌아서시던 그 뒷모습은 참으로 야속했다.


천 개가 넘는 얼굴들 중 어느 것이 진짜 어머니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순된 얼굴들 뒤에 가려진 단 하나의 진실만큼은 이제 안다. 지금 내 삶의 중력이 아이들을 향해 흐르듯, 어머니의 삶에서도 가장 고귀한 중심은 언제나 우리였다.

나이 들어 아프실 때도 자식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 아프지 않고 죽을 수 있기를 기도하셨던 어머니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