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실험을 본 적이 있다. 어린양을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에 넣어 두었다. 한 마리는 어린양 혼자, 한 마리는 어미와 같이. 어린양은 울타리를 뛰어넘으려고 했다. 혼자 있던 양은 울타리 전기에 감전된 경험을 한 후엔 다시는 시도하지 못했다. 또 한 마리, 어미와 같이 있던 어린양은 똑같은 경험을 했으나 계속 시도했다.
가능하면 사랑을 많이 주며 아이들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기억들. 아이는 내가 못 찾는 척을 하면, 가끔 숨어서 ‘엄마 나 여기 있어요’라고 하며 언제든지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때 울려 퍼지던 아이들의 까르륵하던 행복한 웃음소리, 집안의 공기마저 웃는 듯했던 기억들.
아이가 친구와 싸우고 왔을 때 그 얘기를 끝까지 듣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고, 어설픈 조언도 하지 않고, 그 당시에 받았을 아이의 마음과 상처에만 마음을 기울이던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토록 사랑에 매달렸던 이유는, 실은 내 안에 채워지지 않은 거대한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을 통째로 가져가시며 내 손엔 푼돈만 남긴 채 아껴 쓰라 타이르셨다. 결혼 후 내가 임용고사에 합격하기 전 남편 월급에 기대어 하루하루 버티던 내게 동생의 등록금까지 보태라고 하셨다. 내 사정은 안중에도 없이 '어찌 그리 친정에 매몰차냐'며 몰아세우던 그 서늘한 목소리.
어머니에게 나는 쓸모였으며, 내가 느끼는 감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늘 ‘맏이가 집에 도움이 되어야지 자기 혼자 살겠다고 그러느냐’고 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 생각했다. 어머니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나쁜 아이가 나쁜 어른이 되었다.
나는 내내 어미 곁의 어린양 이고 싶었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먼저 어미가 되었다는 것을. 그것이 내 나침반의 북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