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켰더니 레위니옹의 해변 사진이 나왔다. 컴퓨터는 나에게 묻는다.
‘이 사진을 좋아하느냐’고.
좋다고 했다.
그러자 크림색 모래 해변과 너무나도 투명하게 맑은 바다 사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레위니옹의 부칸 카누 해변 사진이다. 사진을 보다 보니 이곳이 궁금해졌다.
이름만 보면 프랑스 같은데.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동쪽으로 800킬로미터, 인도양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 중 하나가 섬 한가운데 솟아 있고, 그 발치로는 크림색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17세기에 프랑스인이 정착한 이후, 아프리카 노예, 인도 계약 노동자, 중국인, 말레이인들이 차례로 들어와 뒤섞였다. 그 혼혈의 후손들이 지금의 크레올이다. 이들은 프랑스어를 쓰면서도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 부르기를 꺼린다.
바닐라는 이 섬의 특산물이다. 꽃 한 송이가 갈색 빈 하나가 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린다. 바닐라를 넣은 케이크와, 생강과 강황으로 향을 낸 크레올 음식들이 시장을 채운다. 부칸 카누 해변은 그런 섬의 서쪽 해안에 있다.
컴퓨터는 어떤 알고리즘으로 이런 사진들을 보여주는 것일까?
알고리즘은 오랫동안 나를 짝사랑해 온 것도 같다. 나의 아주 작은 클릭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내, 나를 묶어두려 한다.
알고리즘은 왜 이렇게 나의 관심이 필요한 것일까?
알고리즘은 내가 화면에 머문 시간과 마우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모두 데이터로 읽어낸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사람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빤히 쳐다보게 되는 것처럼, 알고리즘은 나의 망설임과 머무름을 분석해 내 속마음을 나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어쩌면 알고리즘에게는 ‘좋아요’라는 명시적인 클릭보다, 누를까 말까 고민하며 5초간 멈춰 있었던 그 짧은 정지가 더 진실된 고백일지도 모른다. ‘좋아요’는 가끔의 실수일 수 있지만, 5초의 머무름은 숨길 수 없는 본능적인 관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레위니옹의 부칸 카누라는 해변을 전혀 몰랐다. 알고리즘이 자꾸 보여주니 이곳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이 섬에 여행 가서 부칸 카누 해변의 모래를 밟고 싶어졌다. 마침 이 사진 밑에 지도와 호텔에 대한 정보가 뜬다.
나는 한동안 화면 앞에 멈춰 있었다. 티켓 가격을 검색하고, 호텔 후기를 읽는다. 알고리즘이 원하던 대로였다.
알고리즘의 구애에 응해 레위니옹행 티켓을 끊는다면, 그것은 알고리즘 상술의 승리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 나의 승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