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소설 『메탈』을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 헤비메탈 음악에 빠진 세 아이의 이야기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자꾸 딴 곳을 보았다. 내가 다니던 언덕 위 상업계 고등학교, 등나무 벤치, 그리고 거기서 헤르만 헤세, 루이제 린저, 프로이트를 붙들고 씨름하던 우리가 떠올랐다.
인문계 고등학교와 달리 내가 다닌 상업계 고등학교는 야간 자율학습이 없어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 덕분에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 가질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친구들도 곁에 있었다.
우리 학교는 언덕 높은 곳에 있었다. 등교는 언제나 힘들었다. 더군다나 나처럼 늦잠을 자는 아이가 그 높은 언덕을 올라 지각을 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높은 곳에 있는 만큼 전망이 좋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내려다보면 마당 넓은 집들과 신식 양옥집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좋은 전망 한가운데, 우리 학교의 한 구석에 거대한 바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왕자 바위'란 이름만큼 압도적인 크기였다. 학교 공사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그 바위는 표면이 아주 거칠었다.
우리가 모였던 곳이 바로 등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벤치였다. 수업이 끝나면 보라색 꽃송이가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내려앉은 벤치에서 우리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유독 목소리가 큰 친구가 대화의 물꼬를 트면, 늘 책을 끼고 살던 다른 친구가 차분하고 논리적인 말로 받았다. 세 번째 친구는 평소엔 조용했다. 생활관 합숙에서도 새벽에 혼자 일어나 예습 복습을 하던 친구였는데, 자신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반드시 자기 생각을 말했다.
나는 그토록 오래 품고 있던 질문들을 마음껏 꺼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대학 진학과 멀어진 상업계 고등학교 진학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나에게 친구들과의 토론은 마음속에 굳은 심지가 생기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루이제 린저의 『완전한 사랑』을 읽으며, '진짜 완전한 사랑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있다면 완전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화두로 던지면 무수한 말들이 오고 갔다. 한 친구는 '완전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관념 속에서만 가능하다.' 어떤 친구는 '완전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초라하지 않은가. 힘든 일이지만 완전한 사랑은 분명 존재하고,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한 친구는 '그런 사랑 얘기는 너무나 뜬구름 잡는 얘기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타자 급수 따는 게 중요하지 않나'라면서 분위기를 깨기도 했다.
『메탈』의 아이들이 각자의 인생으로 흩어지며 소설이 끝나는 것처럼, 우리의 고교 시절도 그렇게 끝났다. 은행으로, 회사로, 아니면 대학 진학으로, 혹은 그냥 어른의 자리로. 등나무 벤치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나누던 질문들은 어느 순간부터 입 밖으로 내지 않게 되었다. 삶이 바빠서이기도 했고, 물어볼 사람이 곁에 없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질문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혼자 품게 되었다. 『메탈』을 읽다가 자꾸 딴 곳을 본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표면이 거칠었던 왕자 바위도 봄이면 달라졌다. 철쭉이 피어나면 바위 주변이 온통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