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참 좋았다. 공기에서 드문드문 꽃향기가 났다. 남편과 나, 딸까지 이렇게 우리 세 식구가 놀러 가기로 했다, 강원도 화천으로. 전에도 가끔 들러 북한강 수변을 따라 난 길을 거닐곤 했던 곳이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데크길은 바람과 물 비린내가 섞여 드는 길이다.
걷다가 싫증이 나면, 군인들이 오가는 화천 시내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많은 상점에 ‘군장병과 가족 20% 할인’이라는 문구들이 붙어 있다. ‘우리도 예전엔 군장병 가족이었는데.’라며 웃는다. 아들이 강원도 어딘가에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런 길을 걸었을까.
배가 고파지면 시장통에서 뜨끈한 순댓국을 먹는다. 남편은 아주 맛있어하며 먹는다. 나는 뜨거운 국물 먹는 것을 조금 불편해한다. 피부가 얇기 때문에 자주 입안을 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식기만을 기다리면 음식 맛이 떨어진다. 시장통 순댓국집들 중에 손님이 제일 많은 집에 들른다.
밥을 먹은 후 시장 구경을 한다. 전집에서 빙떡을 산다. 투박한 메밀 전 위에 매콤한 무채를 얹어 돌돌 말아낸 그것. 메밀은 거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식재료이다. 찰기도 없다. 마치 별 맛이 나지 않는 밥과 무채 반찬을 같이 먹는 것 같다.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화려한 조명이 켜진 즉석 사진관이 눈에 들어왔다. 딸은 인생 네 컷 사진을 찍자고 했다. 이상한 안경과 모자를 쓰고, 요상한 표정으로 찍었다. 아빠는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엄청 쑥스러워한다. ‘아빠, 이 안경을 써 보세요. 이 모자도 쓰세요.’ 그래도 딸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한다.
딸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가끔 ‘선생님도 엄마가 있어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있다’고 하면 무척 놀란다며 웃었다. 증거를 보여 줄 것이라며 사진을 집어넣는다.
사진을 챙겨 들고 붕어섬을 찾았다. 섬의 모양이 붕어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춘천댐 완공으로 지대가 높았던 곳만 남으며 생긴 섬이다. 한 30분 정도면 다 돌 수 있는 작은 섬이다.
파크 골프장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혼자 연습을 하고 계셨다. ‘혼자인데도 저렇게 열심히 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을 갈고닦은 후 누군가와 시합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라며, 남편이 말했다.
산책을 하는 내내 물이 지척에 있어 기분이 참 싱그러웠다. 윤슬이 반짝이는 물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내가 물이 된 듯한 기분에 젖는다. 먼지처럼 떠돌던 생각들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바람에 찰랑거리는 물결 소리는 자꾸만 내 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의 젊은 날은 육아와 교직, 부모님 부양으로 빽빽했다. 해가 뜨면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고, 해가 지면 다음 날 할 일을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물을 바라보며 소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한참 동안 물을 보지 못하면 내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 허전하다.
돌아오는 길, 한강다리 불빛이 물 위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오늘 하루 참 많이 걸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QBJZMapJ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