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볼에 대하여

by 정희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나는 수업 시간에 이곳의 지형도를 펼쳐놓고 설명하곤 했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 기자가 가칠봉 능선에서 내려다보니, 해안면의 모습이 칵테일이나 화채를 담는 커다란 볼(Bowl)처럼 생겼다고 해서 '펀치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 단단한 암석은 외곽을 버티고 연한 암석은 먼저 깎여 내려앉으면서 만들어진, 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지형이라는 것. 그 사실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특히 오목한 땅의 모양을.


여름 방학 중 아주 더운 날, 남편과 새벽 일찍 떠나 해안면으로 향했다. 춘천을 지나 배후령 터널을 지났다. 끝없이 이어지는 터널 조명 아래로 우리 차의 엔진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 백미러를 봐도 따라오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길을 통째로 점령한 것 같았다. 가끔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나 고라니 등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남겨져 있었다.



펀치볼에 들어섰다. 산줄기가 마을 전체를 포위하듯 에워싸고, 그 중심에 민가가 모여 있었다. 지형도를 펴놓고 학생들에게 설명하던 그 풍경이 눈앞에 실재했다.

사람 그림자조차 드문, 고요가 짙게 깔린 동네였다. 날도 너무 더웠다.

좀 쉬고 아이스크림도 먹을 겸 구멍가게에 들어갔다. 가게는 아주 작았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매대 위로는 유통기한을 가늠할 수 없는 물건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이 낯선 사람들은 누구지' 하는 얼굴이었다. 웅웅 거리며 힘겹게 돌아가는 낡은 아이스크림 냉동고 문을 열고 바밤바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바밤바는 수분이 말라서 크기가 작아져 있었다. 마치 빼빼 마른 장작 같은 모습이었다.


밖에 앉아서 뜨거운 볕을 피해 가며 먹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나타난 것에 놀랐다. 낯선 방문객을 경계하는 듯한 분위기가 스치며 긴장감이 생겼다.


"땅 사러 오셨어요? 아님 누구네 집 친척이신가요?" 아니라고 대답하자, 의아하게 우리를 보았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백미러 속에 남겨진 그릇 모양의 마을은 한참 동안 내 마음속에서 의문으로 남았다.



몇 년 뒤, 해안면에서 '청춘양구 펀치볼 시래기·사과 축제'를 한다는 소식에 다시 찾았다. 그 의아했던 시선이 더운 날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단조로운 일상에 나타난 낯설고도 궁금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해안면 펀치볼 광장에서 펼쳐지는 축제였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주차장을 이리저리 돌았다.

무청 김치가 눈에 들어왔다. 무는 조그맣고 대신 청이 유난히 길고 컸는데, 평지보다 낮은 기온 때문인가 싶어 자꾸 눈길이 갔다. 빨갛게 버무려진 김치에서 나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고춧가루 양념이 발갛게 밴 주민들의 투박한 손이 무청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내가 다가가자 무청 김치를 한 움큼 집어 올리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몇 년 전 구멍가게 할아버지의 그 서늘했던 눈길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주머니는 '한번 먹어봐요, 이게 진짜 펀치볼 맛이야' 하고 불쑥 김치 한 조각을 내밀었다. 아직 익지 않았음에도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너무 많이 사는 게 아닌가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두 팩을 샀다.

옆에서는 주민들이 사과를 권하셨다. 나는 알레르기 때문에 구경만 했고, 대신 맛을 본 남편은 향이 아주 진하고 달다며 감탄했다. 또 샀다. 여기에 나물이나 된장국을 해 먹을 무청 시래기까지 챙기고 나니, 어느새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그 웃음 너머로, 몇 년 전 주민들의 눈빛이 다르게 읽혔다. 낯선 외지인이 이 깊은 골짜기까지 찾아온 것이 신기해 차마 먼저 말을 붙이지 못했던, 수줍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무청 김치는 익으니 아주 맛있는 김치가 되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음 축제가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