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흐린 하늘이 세상의 빛을 가져가 버렸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벚꽃 나무에는 꽃이 너무나도 많이 피어, 밤에도 밖이 환하게 보인다. 세상이 온통 꽃으로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둡다. 전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불길에 생을 저당 잡힌 이들의 고통은 끝을 알 수 없고, 그 대가로 치솟는 유가는 서민들의 숨통을 죄어온다. 전쟁을 멈출 수도, 유가를 되돌릴 수도 없다. 분노는 있는데 향할 곳이 없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그것을 쏟아낸다.
주식 커뮤니티의 댓글창이 그 출구가 된다. 잘못된 정보를 올린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속이려 한 것도 아닌데, '선동하지 마라'는 말이 돌아온다. 분노가 향한 것은 그 글이 아니라, 그 글을 쓴 사람 너머의 무언가다. 자신과 똑같이 당하고 있는 누군가, 즉 거울 같은 얼굴이 오히려 더 건드리기 쉬운 표적이 된다. 자신이 손댈 수 없는 것에 분노할수록, 자신이 손댈 수 있는 것에 더 가혹해진다.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전쟁을 일으킨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들은 각자의 정치적 생존이나 자국 내 이익을 위해 전쟁을 도구화한다. 분쟁들은 표면적으로는 역사와 종교, 신념의 충돌이 터져 나온 균열처럼 보인다. 하지만 패권 경쟁이 전 지구적 불안의 기저에 흐르고 있다.
상처 입은 짐승이 옆에 있는 동료를 물어뜯듯이, 이는 마치 조선시대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받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차별하며 괴롭히는 것과 닮아 있다. 며느리끼리, 을끼리라도 서로 아끼며 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서로의 얼굴이 아니라, 이 비극적인 무대를 만든 이들일지도 모른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장미가 피어날 무렵의 세상은 평화라는 새 옷을 입고 있기를 꿈꾼다. 그때쯤이면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서로의 얼굴이 아니라 오직 지나간 비극뿐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