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 만에 겨우 내 집을 장만했다. 집값의 절반 이상은 대출이었다. 버는 돈의 거의 전부를 은행 이자로 바쳐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평생 처음으로 우리 명의의 집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좁은 집에서 살던 우리에게 30평대 아파트는 신세계였다. 부엌에서 식구들을 부르려면 목소리를 한 톤 높여야 했다. 항상 붙어살며 옆 사람 숨소리까지 듣던 우리가, 이제 소리를 질러야 겨우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살게 되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집이라 이사 오자마자 아이들이 말했다.
"엄마, 집에서 수련원 냄새 나!" 어떤 날은 "오늘은 밤 냄새 나!" 비 오는 날엔 "비 냄새가 집 안까지 들어왔어!" 안개가 자욱한 날엔 "엄마, 오늘은 집이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아. 안개 냄새 나!"
아이들은 보지 않고 공기를 느꼈고, 냄새로 공간을 기억했다. 그 감각은 도시에서 오래 살아온 내게 낯설고도 낭만적이었다.
나는 이 집에 와서야 그렇게 지독한 안개를 처음 겪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숨 막히게 짙은 안개. 산 중턱이라 짙은 구름이 산에 걸리면 우리 집에서는 그걸 안개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 속에서 내가 안개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달콤한 나날은 고작 두세 달뿐이었다.
문제는 초록이었다. 출퇴근길은 온통 초록, 초록, 초록이었다. 당시 나는 광명시 외곽의 고등학교로 출근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도 외곽이라 외곽을 오가는 구조였다. 학교도 산 가까이에 있어 초록이 넘쳐났다.
초록색, 상쾌하고 예쁜 건 맞다. 하지만 그걸 매일 본다면.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란 나에게는 정말 쉽지 않았다.
너무 답답한 날엔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은 데리러 오지 마." 차로는 30분이면 되는 거리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짜리 대중교통을 타고 퇴근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네온사인과 사람들, 가게들을 보면서.
결국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집을 팔고 싶었다. 집을 보러 온 사람에게 빌트인 가전제품과 가구를 전부 주겠다고 약속하고, 집값도 크게 깎아서 간신히 탈출했다.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힐링 공간이었을 산 중턱의 아파트가, 나에게는 숨 막히는 감옥이었다. 그놈의 초록들 때문에.
나는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과 수많은 사람, 소음과 매연까지도 그리워하는 지독한 아스팔트 키즈다. 지금도,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