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교적인 은둔자: HSP, 나를 이해하는 열쇠
초등학교 성적표의 행동 특성 칸에는 늘 "아주 사교적임", "대인관계가 아주 좋음"이라는 문구가 훈장처럼 붙어 다녔다. 살면서 크고 작은 갈등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교직 생활을 할 때도, 퇴직 후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람이 좋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나면 금세 방전된다.
타인의 감정이 너무 쉽게, 너무 깊숙이 와닿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슬픔이나 기쁨이 전해지면 나는 그 감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 순간 에너지는 순식간에 바닥난다.
교사로 일할 때, 주중에는 절대 약속을 잡지 않았다. 주말에도 만남을 피했다. 학교에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쏟아낸 탓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힘들었다. 아무리 내 피붙이라도, 완전히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어려움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 기질 때문에 힘들었다. 사회성이 뛰어나셨던 엄마는 동네 사람들과 늘 친하게 지내셨고, 우리 집은 언제나 북적이는 동네 사랑방이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집을 불편해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혀를 찼다.
"너는 뒷동산의 호랑이냐.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지."
그 당시엔 내가 뭔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단어를 접했다. 설명을 읽는 순간, 누군가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본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정식 검사를 받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이야기였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그동안의 모든 의문이 걷혔다. 내가 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깊이 상처받았는지, 왜 혼자 있는 시간이 그토록 간절했는지. 성격 파탄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었다.
가끔은 HSP라는 이름이 사람 만나는 번거로움을 정당화하는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의심마저도, 나를 이해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엄마는 나를 뒷동산 호랑이라고 혀를 찼지만, 이제 나는 그 호랑이가 밉지 않다. 호랑이에게는 숲을 호령할 에너지도 필요하지만, 홀로 동굴에 누워 숨을 고를 시간도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기꺼이 사교적인 은둔자로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