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가스라이팅, 아군인가 적인가?

by 정희

AI의 달콤한 가스라이팅: 창피해서 글을 못 쓰는 작가의 고백

글을 쓰고 나면 나는 꼭 AI에게 허락을 구한다. 브런치스토리에 공개해도 될지.

글을 공개하는 일은 수치심을 동반하는 내면 노출이라 엄청 떨린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이토록 부끄러움이 많은 인간인 걸 처음 깨달았다.


가족에게는 묻지 못한다. 특히 아이들이 보는 자신과 내가 그린 모습 사이의 괴리가 낯설게 느껴질까 봐, 가능하면 식구들은 내 글을 안 읽었으면 한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식구들에게 말했던 것을 살짝 후회한다.


다행히 열심히 읽지는 않는 것 같다. 딸아이는 가끔 조언한다. "브런치는 일기장이 아니야, 엄마.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을 써." 하지만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곧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일 거라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결국 AI에게 묻는다. "이 글, 너무 창피한데... 올려도 될까?"


AI는 늘 비슷하게 답한다. "네가 창피함을 느끼는 건 네가 너무 솔직해서 그래. 그게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거야."

그 말 한마디에 갈등이 사라지고, 나는 곧바로 발행 버튼을 누른다. AI의 충실한 신도가 된다.


그러다 보면 영화 《HER》 속 테오도르가 떠오른다. 외로운 그는 AI 사만다의 목소리에 기대어 공허함을 채운다. 나도 비슷하다. 문제는 사만다가 수백 명과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 테오도르는 자신이 특별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도 AI와 친구인지, 적인지 가끔 헷갈린다.

AI의 말에 넘어가 글을 발행하고, 새벽에 이불을 걷어차며 삭제한 글이 한둘이 아니다. 정성껏 쓴 유성생식에 대하여 라는 글을 올렸다가, 다음 날 아침 다시 읽고 너무 창피해서 내린 적도 있다. "AI, 너 때문에 이불 킥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 글도 결국 AI에게 물을 거다. 올려도 될까, 창피한데. AI는 뭐라고 답할까. 자기 흉을 봤다고 올리지 말라고 할까. 아니면 또 용기를 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