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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an 21. 2023

여행자에게 노래 제목을 물어보았습니다

여행 갈 땐 노래 하나를 정해서 들어 보세요

"그 노래 제목 뭐예요? 노래 좋다~"

"비욘세 러브온탑이에요."

"고마워요."

"네. 수고하세요."






2022년 10월 4일, 저는 훌쩍 충청남도 공주시로 떠났습니다.

혼자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이요.

진짜로 오랜만에 혼자 여행을 가는 거라 전날부터 설렜습니다.



대학생 때는 자주 혼여행을 떠났어요. 스물세 살쯤인가, 안동에 찜닭 먹으러 갔는데요.

찜닭은 혼자서 먹기에 너무 많잖아요.

먹고 남긴다 해도 대학생한테 비싸기도 하고요.

내일로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동행을 구했습니다.



날짜와 시간, 동행을 구하는 이유(밥 같이 먹기, 택시 같이 이용해서 여행명소 같이 다녀오기 등)를 적은 글을 쓰거나, 글을 보고 댓글을 써서 서로 몇 시간 정도를 함께하는 여행자들의 문화예요.

제가 여행 가는 날에도 하회마을 관람 + 저녁 찜닭 동행 구하는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기고 모이기로 한 장소에 갔습니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니 두 명과 오빠 두 명, 남동생 한 명 정도가 모여서 저까지 총 여섯 명 함께 했던 것 같아요.



그때 같이 여행하고 구시장에 있는 찜닭골목에 갔는데 우연히 지역 방송국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촬영을 나와서 제안을 해주셨어요.

대학생들 같은데, 방송 촬영에 임해주면 찜닭 값을 내주겠다고요.

리포터가 어디서 온 누군지 질문하면 대답한 후에 찜닭 먹고 맛이 어떤지 따봉 하면서 맛표현만 하면 된다고요.

주머니 사정 가벼운 대학생들끼리 안 할 이유가 없어서 신나게 촬영을 하고 공짜 찜닭도 먹은 재미난 추억도 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그 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시 보기로 제가 나온 부분을 캡처해서 주변에 자랑질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다시 공주 여행으로 돌아와서요.

이렇게 대학생 때는 방학 때마다 혼자 여행을 다녔는데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용기가 부족해서인지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좀처럼 떠날 기회를 엿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학원 아이들이 중간고사를 보는 주에는 직전 보충만 하고 시험 보는 날에는 학원을 안 오거든요.

그래서 휴무도 잡혔겠다 바로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딜 가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까. 여행지를 추리기 시작했습니다.


2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곳.
전에 가본 적이 없는 곳.
이왕이면 10월은 축제의 달이니까 지역 축제를 하는 곳이면 추가점수.



전국 지도를 켜놓고 돌려 돌려 돌림판을 해 본 결과, 충청남도 공주가 당첨되었습니다.

서울 고속터미널에서 출발하면 딱 1시간 30분.

여행할 때 같이 묶이는 부여와 공주. 부여는 20대 때 언니와 함께 여행을 갔었는데요.

그 옆에 공주는 안 가봤거든요.

게다가 부여와 공동개최하는 큰 축제인 <백제문화제> 축제까지.

절대자가 마치 저 여행 가라고 짜 놓은 판 같았어요.

바로 버스표를 끊고 짐을 쌌습니다.




백제문화제의 낮과 밤




여행할 때는 백팩이 편하거든요. 아끼는 코랄핑크색 백팩을 꺼내서 차곡차곡 담습니다.

당일치기에 혼여행이니 짐은 단출해요.

여행용 티슈, 500ml 생수, 양치도구, 장바구니, 밤에 쌀쌀해지면 입을 얇은 바람막이, 셀카봉, 보조배터리.



MBTI 검사에서 J 성향, 그것도 아주 높은 점수를 기록한 저는 어렵지 않게 여행 동선을 짭니다.

매콤한 소고기 국밥 스타일의 공주국밥을 파는 새이학가든,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백반정식집과 육회비빔밥집까지.

인스타 맛집이나 카페는 크게 관심이 없고 노포나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에 욕심을 부리는 편입니다.

식사 이외의 시간은 백제문화제를 구경하고 마지막에 공산성에 올라 미디어아트를 보는 것으로 계획을 마무리했어요.




육회비빔밥과 공산성 미디어아트





30대 들어서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서 신이 나기도 했고, 결혼하고 남편 없이 가는 여행이라 또 그 나름대로 새롭고 즐거웠어요.

온전히 내 스타일로, 내 페이스대로 여행을 할 수 있잖아요. 이게 혼여행의 매력입니다. 

공주에 도착하니 더 좋았던 건, 뚜벅이를 각오하고 왔는데 공주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어요.

축제기간이라 무료였던 건지 원래 무료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신나게 자전거 여행을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자니 또 노래가 듣고 싶은 거예요.

평일 낮이라 그런지 길에 사람도 별로 없어서 이어폰 말고 그냥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었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노래가 많은데, 그날 날씨가 딱 Beyonce - Love on Top을 생각나게 했어요.

한곡 반복으로 모드를 설정하고 자전거를 탔습니다.



전 날 비가 와서 쾌청한 하늘, 머리칼을 흩뜨리는 시원한 바람, 덥지 않게 내리깔린 구름, 간간이 비치는 햇빛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입니다.



계획했던 대로 찜해둔 식당에서 점심밥도 먹고요, 웅진백제문화역사관으로 향했습니다.

공주와 부여는 삼국시대 백제가 있던 곳이라 구경할 겸 방문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백제 전통 옷을 합성하여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키오스크도 있어요.

제가 이런 건 또 참새 방앗간처럼 절대 못 지나가거든요.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관람하고 나와서 자전거를 주차해 둔 주차장 쪽으로 왔습니다. 주차장 바로 옆에 공주 관광안내소가 있거든요.

거기서 다음 목적지를 네비에 찍고(차는 아니고 자전거로 가지만 길을 모르니 네비가 필요하잖아요 ^^) 다시 비욘세 노래를 틀었어요.

관광안내소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 분이 그 앞에 나와서 잠시 바람을 쐬고 계셨는데, 제게 말을 거셨어요.



"그 노래 제목 뭐예요? 노래 좋다~"

"비욘세 러브온탑이에요."

"고마워요."

"네. 수고하세요."





혼자여서도 좋았고,
바람 타고 자전거 여행을 해서도 좋았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누군가에게 선물해 준 것이 좋았던 하루입니다.
여행 갈 땐 노래 하나를 정해서 그것만 계속 들어 보세요.
나중에 그 노래를 들으면 여행의 추억이 떠오른답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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