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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an 25. 2023

숨 막히는 헌혈 대결

2007년 1월 15일. 여러분들에겐 어떤 날이었나요?

학생이었다면 겨울 방학, 이불에 누워 귤을 까먹으면서 뒹굴거렸을 수도 있고요.

직장인이라면 맹추위에 출근을 하기 싫어서 따스한 체온으로 밤새 달궈진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었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요?

저에게는 첫 헌혈을 한 날입니다.




첫 헌혈 하고 받은 헌혈증서




학생 시절 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헌혈하기였습니다.

ENFJ의 피가 흐르는 저는 (그 당시에는 MBTI는 유행하지 않았고 그저 혈액형 성격 테스트가 있었을 뿐이지요) 그 당시에도 남을 돕고자 하는 일에 눈이 도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헌혈은 종류가 여러 가지 있는데요.

모든 피를 그대로 뽑는 전혈, 노란색 성분만 뽑는 혈장, 다쳤을 때 피가 굳게 하는 걸 도와주는 혈소판 등이 있습니다.

전혈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기본 헌혈인데요.

이 전혈은 나이 제한이 만 16세부터 가능해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17세 생일이 지나고 헌혈의 집을 방문했어요.

그러나 결과는 거절!

일정 수준의 철분 수치를 넘어야 헌혈이 가능합니다.

여성분들 많은 수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약한 빈혈을 가지고 있는데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뭐.

그래서 큰 기대와 사명감(?)을 가졌던 첫 헌혈의 집 방문은 어이없게 끝나고 맙니다.




그 후 방학 동안 열심히 철분이 많다는 음식들도 주워 먹고, 순대 먹을 때 괜히 순대보다 간을 더 챙겨 먹고 하면서 심기일전!

마지막 달력이 넘어가고 새 해가 된 2007년, 여전히 만으로는 16세였지만 명목상으론 18세가 되어 다시 방문하게 됩니다.

이번엔 합격!!!

기쁨을 안고 헌혈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추운 겨울날이 생각납니다.

처음 해본 헌혈에 괜히 팔을 굽히면 안 될 것 같아 뻣뻣하고 어색한 왼쪽 팔을 가지고요.




버킷리스트를 이루어서 느슨해진 것도 있고 고등학교 2~3학년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느라 헌혈은 잠시 잊고 지냈습니다.

대학교 진학 후에는 학교가 위치한 지하철 역사 안에 헌혈의 집이 있기도 했고, 영화표를 공짜로 주니까 그걸 보려고 이따금씩 헌혈을 했어요.

술자리가 잦았기 때문에 헌혈을 자주 하진 못했지만요.







그러다 지난 2022년, 이사를 오면서 짐을 정리하던 때 잊고 있던 헌혈증서 다발을 발견했어요.

옛날 생각이 나면서 다시 헌혈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이사를 오고 난 후에 짐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고 헌혈을 다시 재개하기로 결심합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30회 이상을 헌혈하면 은장, 50회 이상은 금장 등 상장과 트로피도 주는 거예요?

세상에. 이거 놓칠 수 없잖아요.

저는 또 이런 거 자랑하는 거 좋아하잖아요.

남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좋은 일 하는 거잖아요 원래.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세상 좋아져서 이제 헌혈은 어플로 예약을 하고 갈 수도 있더라고요!?

바로 다운로드하고 예약을 하니 설렜어요.

저는 원래 약이랑 병원을 좋아하는(?) 특이체질이거든요.

주사는 껌이고요, 치과도 누가 가라고 안 해도 잘만 가는 강심장입니다.

예전에는 초코파이만 줬던 것 같은데 요새는 과자도 주더라고요.

포카리스웨트도 주고요.



헌혈 어플이에요. 이름은 레드커넥트.



그렇게 다시 헌혈을 시작했는데요.

갑자기 남편이 발동이 걸렸습니다.

남편은 군대에 있을 때, 그리고 대학생 때 조금씩 헌혈을 했었나 봐요.

아쉽게도 그때 헌혈증서는 다 잃어버렸대요.

근데 헌혈하면 상 준다고 한 것 때문인지, 겉보기에는 체력 쪼렙인(?) 제가 헌혈을 20회 가까이했다는 것이 놀라웠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자기도 헌혈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숨 막히는 헌혈 대결!



몇 번은 같이 시간을 맞춰서 주말에 예약을 하고 갔거든요?

근데 갑자기 어느 날 퇴근하고 오더니 의미심장하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 거예요?

뭐냐고 물으니 쓱하고 내밀던 손...

그 손 밑에는 헌혈증서와 기념품 문화상품권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빨리 은장을 받겠다고 몰래 헌혈을 하고 온 거예요.



헌혈증과 기념품 상픔권들



세상에나. 이렇게 좋은 일에 대결이라고?

질 수 없죠.



저도 틈만 나면 몰래 헌혈을 하고 음흉 웃음 짓고.

남편도 또한 질세라 몰래 하고 와서 또 식탁에 보란 듯이 헌혈증서 놓고.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헌혈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서 헌혈 한 텀을 쉬었거든요.

그래서 저 23회 vs 남편 22회로 앞서고 있었는데요.

제가 지난 20일에 예약하고 갔지만 철분 부족으로 실패하고 돌아왔어요.

2점 차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제길!

심지어 오늘 남편이 헌혈하고 와서 똑같이 23회 동점이 되었습니다.



과연 누가 더 빨리 은장을 받게 될까요?

절대 질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 특훈입니다.

간, 선지, 계란, 깻잎. 먹습니다!

왜?? 헌혈 대결 이겨야 하니까요!!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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