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로 Jan 20. 2023

사람들은 왜 의미 없는 몸짓에 즐거워하는 걸까

1. 지름 22cm의 구를 발을 이용해서 찬다.


2. 손은 구에 닿으면 안 된다.


3. 정해진 그물 모양의 구조물에 구가 들어가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의미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 몸짓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엄청나게 열광을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얼마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해서 전 국민이 하나 되어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장 손흥민 선수의 마스크 투혼부터 황인범 선수의 붕대 투혼까지..

모든 선수가 하나 된 정신으로 값진 성과를 냈던 감동의 드라마입니다.







애당초 모든 운동은 사실 의미 없는 몸짓입니다.

야생의 세계였다면, 리듬체조 종목처럼 리본이나 곤봉을 가지고 열심히 흔들고 하늘로 던져서 다시 받고 하는 것이 생존에 하등 도움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펜싱은 어떨까요? 칼로 찌르는 행위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요? 맞습니다.

커다란 동물과 맞서거나 또는 우리 부족으로 쳐들어온 다른 부족민과 전쟁이 일어난다면 칼을 사용하는 검술은 큰 도움이 되지요.



하지만 전쟁 상황에서 꼭 플뢰레처럼 팔, 머리, 다리를 제외한 '상체'를 '찌르기'로 공격해야 하진 않잖아요.

에페는 '전신'을 '찌르기' 할 수는 있다만 사실 지금 같은 현대에는 검술로 전쟁을 하지는 않습니다.

로마 시대의 글래디에이터가 아니니까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효자 종목인 양궁을 살펴봅시다.

야생에서 활을 쏴서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지 않냐고요? 물론 가능하겠죠.

하지만 내가 오늘 저녁으로 찜해둔 저 꿩이 양궁 과녁처럼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내 밥이 되어줄 확률은 만무합니다.



이렇게 생존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런 의미 없는 몸짓들에,
우리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목숨 걸고' 즐거워합니다.






오늘 시에서 겨울마다 운영하는 야외 스케이트장에 놀러 갔습니다.

본격적인 설 연휴가 시작하기 전 평일 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아주 쾌적했어요.

한참을 반시계 방향으로 타고나니 재미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오늘 아침의 저는 분명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하면서 걸었거든요.

어젯밤에 살짝 눈이 오는 바람에 집 앞 골목 쪽은 응달이어서 살얼음이 얼어있었어요.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접지력을 높이면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의 저는요.

일부러 물을 넣어서 얼려 최대한 미끄럽게 만든 공간에,

중심도 잡기 힘든 일자 날을 달아서 최대한 미끄럽게 만든 신발을 신고,

가장자리 펜스 손잡이와 멀어져서 최대한 미끄러움을 느끼면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라고요.





더 놀라운 건 저 말고도 거기에 있었던 70여 명의 사람들이 전부 다요.

아니 평소에는 미끄러지기 싫어서 펭귄처럼 뒤뚱뒤뚱 걷는데.


돈까지 내고 일부러 미끄러우러 간다니요.

미끄러져서 쿵 넘어진다 해도 웃으면서 일어나서 또 미끄러우려고 한다니요.

심지어 모두가 약속된 방향인 반시계방향으로 미끌미끌을 한다니요!



인간은 왜 이다지도 아름답고 귀여운 걸까요. 

아무 의미 없는 미끄러운 회전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웃고 있어요.



공을 세게 던지고 그걸 얇은 방망이로 치고. 공을 잡고 질주하고.

유치한 공놀이를 보러 한국 시리즈에는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야구 경기장에 가면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역전승이라도 거두잖아요?

옆 자리 앉은 오늘 처음 본 모르는 사람이랑도 어깨동무를 하고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으쌰라 으쌰"를 부르고요.

호프집에서는 기분 좋은 사장님이 써비스 안주로 계란후라이를 테이블마다 돌려요.






설날에 윷놀이하는 집들도 많지요? 윷놀이도 진짜 웃겨요. 생각해 보세요.

나무 막대기 네 개 한 번에 던져가지고 몇 개가 뒤집어지냐를 봐요.

까르르 다 같이 웃기도 하고 말이 잡히면 탄식을 하고요.

또 담요 밖으로 막대기가 나가떨어지면 무효라고 하고요.

나무 막대기 가지고도 진짜 잘 놀지요?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중력을 생각했다면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윷가락이 떨어지는 걸 보고 중력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혼자서 허공을 발로 차면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축구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는 선수들이 발을 차면 박수를 받지요. 혼자서 미끄러운 공간에 들어가 미끌거리고 있으면 미쳤냐고 하겠지만 빙상장에서는 모두가 웃으며 행복해해요.


의미 없는 몸짓에 이토록 즐거운 이유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여서가 아닐까요. 나만이 아니라 서로여서가 아닐까요. 같이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의미 없는 몸짓을 하러, 일요일에도 빙상장에 갑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작가의 이전글 왜요? 제가 전액 장학금 받은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