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은색 3869 구형(아마 구구구구구구형 정도?) 소나타를 우리 아빠는 무척이나 아꼈다.
이상하게 집이나 방은 별로 치우는 것과 거리가 먼 아빤데 차는 끔찍이도 아꼈다.
먼지떨이개로 항상 먼지를 털고, 좌석 시트도 항상 올바르게, 차량 안에 잡다한 것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세차도 어찌나 광이 나게 하는지. 어릴 적에 아빠를 따라 세차를 가는 날은 항상 기분이 좋았다.
왜 세차를 가는 날이 그렇게 설레고 날씨가 항상 좋았었는지를 이제와 운전자가 되어 보니 깨달았다.
보통의 자동차 주인은 향후 며칠 동안은 비나 눈 소식이 없을 때 세차를 한다.
시간, 돈, 노력을 들여 세차를 했는데 다시 눈이나 비가 오면 그 수고들이 모두 수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도 보통의 운전자들처럼, 앞으로 날씨가 좋다고 예상되는 날 세차를 했을 것이기에 아빠를 따라 세차 가는 날은 그리도 날씨가 좋았던 거겠지.
아빠는 보통 휴일 오전에 세차를 가곤 했기에, 종종 아빠한테 부탁을 하곤 했다.
아빠, 세차 언제가? 갈 때 나 꼭 깨워서 같이 가야 돼. 혼자 가지 마.
늦잠을 자다가 아빠가 나를 두고 홀랑 세차를 하러 갈까 봐 몇 번이고 확답을 받아냈었다.
아마 아빠의 자동차 사랑이라면 손세차도 분명 자주 하셨을 것 같은데, 손세차는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럴 땐 나 몰래 가서 하셨을 것 같다는 추론을 해본다.
그래서 내가 이 글에서 말하는 세차란, 주유소에 딸려있는 세차 기계 터널에 들어가서 하는 자동 세차를 말하는 것이다.
자동 세차는 나와 언니에게는 단순한 car wash가 아닌 하나의 모험이었다.
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를 예전엔 이렇게 불렀답니다. 어린이 청소년 여러분!)은 지금도 비싸지만 그때도 상당히 비싼 티켓값을 자랑하는 대기업의 가족 복합 문화 놀이동산이었다.
그래서 자주 가진 못했는데, 뭔가 탐험을 하는 (지금의 아마존이나 신밧드의 모험 정도?) 놀이기구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데 이게 세차를 하면 딱 그런 느낌이다.
우선 어두컴컴하고, 무시무시하고 커다란 기계가 있고, 무서운 동작음이 크게 울리고, 그러다 비누 거품이 분사되면 앞이고 옆이고 시야가 차단되고, 온갖 털이 달린 세차 괴물(언니와 나는 이것을 몬스터 주식회사 설리라고 불렀다.)이 붕붕 회전 운동을 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련의 과정들이 모험처럼 다가왔다.
이미지 출처: 디즈니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
정글 모험을 떠나는 것 같아서였는지 언니와 나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세차가 시작되면 퀴즈 탐험 동물의 세계 OST처럼 "우~~~ 와~~~ 우와~~!! 우 와~~!!" 하며 손바닥을 쫙 펴서 입 앞을 막았다 뗐다 하며 타잔 흉내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