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로 Jun 11. 2021

요단강 도너츠

 2015년 8월, 나는 엄마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떠났다. 2015년은 내가 첫 회사에 입사한 해이다. 작고 소중한 월급들을 모으고 모아 첫여름 휴가 때 엄마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여행지의 선정 과정은 단순했다. 너무 멀면 안 되니 미국과 유럽은 탈락. 따끈한 월급통장에 잉크도 마르기 전이니 비싼 곳은 못 가서 싱가포르는 탈락. 우리 둘 다 물놀이를 좋아하니 동남아 쪽으로 알아보다가 한국 사람이 상대적으로 덜 간다는 말레이시아에 꽂혀서 비행기 편을 예약했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은 패키지여행이 낫다고들 한다. 젊은 자식들이 계획을 짜면 부모님 취향에도 안 맞고 사사건건 싸움이 난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나와 엄마의 성격 상, 패키지여행에 꼭 포함되는 억지로 물건을 강매당해야 하는 '쇼핑타임'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대학 시절 3주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갈 때도 혼자 계획을 짜서 잘 다녀왔기에 여정을 직접 짜는 것도 부담 없었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해서는 싱싱한 해산물들과 열대 과일 등으로 이루어진 산해 진미를 실컷 즐겼다.


호텔 조식과 호텔 앞 야시장에서 파는 맛깔난 음식들


 날씨도 어찌나 좋은지 선크림을 잔뜩 발랐다. 사건이 있던 그날은 반딧불이 투어를 하는 날이었다.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약 2시간을 미니버스로 달려 도착한 곳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이었다. 낮에는 강에서 보트를 타고 맹그로브 열대우림을 지나면서 원숭이를 구경하고 밤에 반딧불이를 보는 일정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차에서 오래 이동했더니 배가 고팠다. 보트 탑승장에는 투어객들을 위한 간단한 간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작은 사이즈의 도너츠와 만두튀김, 바나나 튀김 등이 있어서 접시에 양껏 담아 커피와 함께 즐겼다. 그리고는 신나게 출발!


문제의 도너츠와 만두


 보트를 타고 강을 도는 30분 동안 운이 좋아야 열대우림 원숭이를 본다던데, 우리 팀은 초반부터 여러 마리의 원숭이를 볼 수 있었다.


사진에는 원숭이가 나오지 않았다...


보트가 출렁출렁 거리면서 이동하니 약간 속이 안 좋았다. 원숭이들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면서 보트는 강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점까지 도착했다. 다시 돌아가는데 15분이 걸린다. 큰일이 났다. 속이 안 좋은 것을 넘어 점점 숨을 못 쉬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급똥 신호가 왔을 때 1분 1초가 얼마나 긴지 생각해보면 15분은 억겁의 시간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체하는 경우가 없는 강철 위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근데 하필 지금? 어떡하지? 여긴 이역만리 타국이고 보트 위인데. 게다가 보트 운전 가이드는 한국어는 못 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중국인이었다. 우리 엄마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한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서 일단 눕고 봤다. 가이드와 주변 관광객들은 어찌 된 일이냐며 각자의 언어로 웅성이기 시작했다. 나는 축축한 보트 바닥에 누워 정신을 부여잡으며 엄마에게 내 핸드폰을 쥐어 주며 말했다. "윽.. 엄마.. 내가 혹시 쓰러지면 여기로 연락해...." 핸드폰 화면에는 OO투어 사장님 번호가 띄워져 있었다


 하필이면 한국 관광객이 없는 곳으로 가겠다며 말레이시아를 여행지로 정했던 터라 우리가 탔던 보트에는 한국인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대형 투어사 패키지로 온 것도 아니니 한국인 가이드 연락처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여행 마지막 날에 편하게 랜드마크들을 구경하고 싶어서, 본인 자가용으로 소규모 투어를 해주는 한국인 사장님에게 약을 해 두었었다. 지금 여기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은 그 사장님 뿐이라 번호를 엄마에게 넘겨주고 정신을 반쯤 놓고 말았다.


 선착장으로 보트가 돌아오고 나는 육지로 건져 올려지다시피 해서 아까 문제의 간식을 먹었던 탑승장 대기실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체했다'는 영어로 뭔지 모르니까 그냥 대충 아프다, 복통이 있다는 뜻인 "I'm sick. I have a stomachache."라고 말했다. 보트를 운전했던 중국인 가이드가 어찌 저찌 알아 들었는지 잠시 사라졌다가 정로환 같이 생긴 약을 어디선가 가지고 왔다.


앞에 앉은 사람들이 현지 보트회사 직원 및 보트 가이드들.


'아니 이거 무슨 성분인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막 먹어도 되나? 약 먹고 더 큰일이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마땅히 다른 도리가 없었다. 20여 개의 말레이시아 정로환을 입에 털어 넣고 덜 마른 수건처럼 나무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스럽게도 말레이시아산 정로환은 효과가 좋았고, 나는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엄마는 신나게 여행 왔다가 기절한 딸을 데리고 말도 안 통하는 데에서 국제 미아가 될 뻔해서인지 얼굴이 시꺼메져 있었다. 멋을 부리느라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던 나는 어느새 우스꽝스러운 몸빼바지를 덧입은 꼴이었다.


눈 뜨고 못 봐줄 총체적 난국인 패션 테러. 죽다 살아나서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상태이다.


보트 바닥에 누워 요단강 문턱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배낭에 있던 여분의 바지를 입혔다고 했다. 쓰러질 때 쓰러지더라도 딸의 빤쓰는 보여줄 수 없다는 K-유교 엄마의 조치였다.


 뭔가를 먹고 탈이 나면 그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이 많다. 먹깨비인 나에게는 어림도 없다. 나는 지금도 도너츠와 만두와 바나나를 잘 먹는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배를 타게 된다면 저 간식들은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니면 정로환을 챙겨 가든지.




21.06.18 다음 메인, 카카오 # 탭에 소개되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