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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ul 07. 2021

엄마와 나의 시차

그녀와 나의 연대기

16세의 엄마

40분 넘게 걸어서 중학교에 다녔다. 너무 멀어서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에는 학교에 안 갔다. 농사일이 바쁜 시기에도 학교에 안 갔다. 새참 심부름을 갈 때 가끔씩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한 모금씩 몰래 마셨다.



16세의

여름 방학 때 새벽 3시까지 포도를 먹으며 신나게 메이플스토리 게임을 했다. 수학 공부가 어려워서 하기 싫었다. 헬리콥터를 타 보는 게 소원이었다. 처음으로 부반장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당시 내가 수행평가로 제출했었던 소망그림책






20세의 엄마

수원으로 올라와서 간호조무사 생활을 했다. 보통 병원 건물에 딸려 있는 기숙사에서 동료 조무사들과 함께 지냈다. 쉬는 날엔 친구들과 남문에 놀러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화성도 구경했다.



20세의 나

일요일도 학교에 갈 정도로 신나게 대학 생활을 즐겼다. 축제 기간에는 부산 출신 대학 동기의 기숙사에서 신세를 지고 외박을 했다. 대학교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겁고 즐거웠다. 과외로 용돈을 벌어 썼다.



대학교 시절 과잠을 입고.






24세의 엄마

친구와 나들이하다가 남문 근처 길거리에 있는 점쟁이에게 점을 봤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타로점 보듯이. 점쟁이가 말하길 아들 둘 있는 집의 막내랑 결혼할 운명이라 했다. 그때 옆에서 얼쩡거리던 한 사내가 "내가 아들만 있는 집 막내아들인데 아가씨 맘에 든다. 차 한잔 하자" 했다. 그리고 후에 그 사내와 결혼했다. 알고 보니 그 사내는 막내가 아니고 3형제 중 둘째였다.



24세의 나

취업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원래 졸업 연도에 취업이 안 돼서 6개월 졸업 유예를 했다. 인턴과 계약직 일을 하며 자기소개서를 썼다. 집에 있으면 집중이 안 돼서 카페에 갔다. 자소서를 하루 종일 써야 하니까 가능하면 천 원에 아메리카노 리필이 되는 카페에 갔다.



좌) 첫 인턴 시절    우) 취업 성공 후 친한 친구들과 만난 자리






30세의 엄마

청약에 당첨됐다. 수원의 반지하 빌라에 살다가 평촌 신도시의 아파트 19층에 살게 되었다. 딸 둘을 데리고 새 집에 이사 왔다. 똑똑한 첫째와 찡찡이 둘째, 그리고 남편과 함께 내 집 마련 파티를 했다.



30세의 나

아홉수 삼재를 호되게 겪고 직업을 바꿨다. 파도에 휩쓸린 것 같은 얼룩진 스물아홉 동안에 결혼 준비를 하고 서른에 결혼했다. 이토록 위태로웠던 서른에 남편은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였다.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드디어 헬리콥터를 탔다. '가슴 설렌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니스에서 모나코를 갈 때 탔던 헬리콥터








32세의 엄마

딸 둘을 악착같이 가르쳤다. 결혼하고 바로 일을 그만두고 계속 아이들 교육에 전념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하나라도 더 읽혔다. 복도식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이웃들과 친척에게 얻은 동화책과 전집을 열심히 읽어주고 설명해주었다.



32세의 나

휴대폰 상단 상태 알림 창에 자꾸 성가시게 뜨는 광고 끄는 법을 엄마에게 알려준다. 농협 은행 어플에서 무료 입출금 알림 설정하는 법을 엄마에게 알려준다. 친구와 군산으로 놀러 간다는 엄마에게 여행 일정과 지도를 A4용지에 크게 써서 알려준다.



엄마에게 짜 준 군산 여행 일정표



간이 날 때마다 가능하면 엄마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애쓴다. 어린 나에게 엄마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적지 않은 나이의 엄마가 혹여나 아파질까 봐 마음이 조급하기만 하다. 어린 내가 아플까 봐 엄마가 가슴 졸였던 것처럼. 그녀와 나의 연대기를 오래 쓸 수 있도록 엄마가 건강했으면 한다. 엄마와 나의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같은 시차가 오래도록 유지되었으면 한다.




엄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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