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낙하산 장비를 어깨에 착용하고 나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강사님의 지시가 귀에 꽂힌다.
"자 1시 방향으로 달릴게요. 지금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가세요!"
"흐어어어~"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있는 화담숲에 입장 티켓팅이 시작될 때, 잘못 디딘 신발창 아래에 구린내가 나는 은행 열매 과육이 묻을 때, 옆 자리 사람이 새로 산 트렌치코트를 본전 뽑게 자주 입을 때.
가을이 왔구나.
지난여름 남편과 경기도 양평 용문산 자락에서 패러글라이딩을 도전했다. 나름 버킷리스트였던 도전이라 설렜다.
지상에 있는 패러 사무실에 도착하면 공군 조종사처럼 상하의가 붙어있는 점프슈트로 옷을 갈아입는다. 질병이나 수술 이력에 대한 여러 질문을 답변하고 사인을 하고 나면 픽업트럭에 탄다. 픽업트럭은 정말,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포장되지 않은 산 비탈길'을 약 20여 분간 오른다.
'와 이 픽업트럭은 타이어를 3개월마다 교체해야겠는데?'
돌들과 모래가 가득한 비포장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타이어가 마모되는 느낌이 나한테까지 난다.
길을 오르는 중에 손님을 이륙장에 데려다주고 내려오는 다른 트럭을 만난다. 아뿔싸! 외길인데 어쩌지? 생각하고 있으면 노련한 운전 직원분들은 내 눈엔 보이지 않던 양보용(?) 갓길(?)로 차를 대며 안전하게 올라간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멀미를 슬슬 느낄 때쯤 내린다. 높은 하늘이 가까워진 이륙장에서 신나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뒤에서 함께 뛰게 되는 강사님이 부른다.
"여기에 오른발 넣고요, 어깨에 매듯이 하세요. 자 우리는 준비되면 바로 뛸 거고요. 저 언덕 아래로 제가 달리라고 하면 쭉 달리면 됩니다. 절대 무섭다고 멈추거나 주저앉으면 안 돼요. 큰 사고 나요. 무서워도 계속 달리면 아주 안전하게 뜹니다. 다리가 공중에 떠도 멈추지 말고 허공에서 계속 달리세요. 아셨죠?"
무거운 낙하산 장비를 어깨에 착용하고 나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강사님의 지시가 귀에 꽂힌다.
"자 1시 방향으로 달릴게요. 지금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가세요!"
"흐어어어~"
아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진짜 틱톡 15초짜리 숏폼 영상 하나도 못 찍을 시간만 주고 바로 냅다 달려야 한다. 무서워!
언덕 아래로 몇 발자국 안 달리면 금세 몸이 둥실 뜬다. 어? 이거 된 건가?
뛸 때는 분명 나 혼자 뛰었는데 바로 뒤에 귓가에 강사님의 목소리기 들린다.
"잘하셨어요. 자 안전하게 떴습니다. 멋지죠?"
더운 여름 산 꼭대기의 바람은 시원했고 청량한 녹음을 하늘을 날며 감상하는 기분은 멋졌다.
"강사님, 이거 단풍 들 때 또 타면 진짜 멋있겠네요."
"네, 계절마다 오시는 손님들도 계세요. 또 오면 할인도 해 드리니 가을에 오세요."
남편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8월의 비행. 엄마랑 또 와야지 하고 마음먹은 시점.
하늘을 천천히 가르며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다음 가을 단풍시즌에 꼭 엄마랑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익스트림 마니아다.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이나 자이로스윙, 혜성 특급도 잘 타고 심지어 VR카페에 같이 갔을 때는 직원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VR 스키를 실컷 탔다. 이 정도 강심장의 엄마면 패러글라이딩도 잘 타지 싶었다.
"엄마, 다가오는 11월 4일 목요일에 우리 같이 패러글라이딩 타러 갈래?"
"... 우리 회사 쌤들 두 분도 탔더라. 너 작은 이모도 탔던데?"
'엄마어'를 번역하자면,
무척 기대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약속한 11월 4일 목요일, 아침 9시에 엄마를 차에 태우고 양평으로 떠난다.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는 양평은 처음이라고 한다. 다른 곳들은 요리조리 잘 다녔지만, 이상하게 두물머리는 처음이라 한다. 이영자가 추천하는 맛집인 '두물머리 연핫도그'에서 매운 소시지 맛으로 핫도그를 하나 사서 둘이 나눠 먹는다. 빨강 노랑 곱게도 옷을 차려입은 나무들 앞에서, 강줄기 앞에서 엄마랑 실컷 사진을 찍는다.
"패러글라이딩은 몇 시야?"
"1시에 예약했어. 근데 그전에 들러야 할 데가 또 있어."
"어디 좋은 데 또 있나 보네."
엄마 얼굴에 헤실헤실 발간 단풍이 핀다.
여행을 떠나기 전,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에 '양평 엄마랑'이라는 검색어로 검색을 했다. '더그림'이라는 개인 카페 겸 정원이 나오는데 사진을 찍기 좋게 아름답게 꾸며놓아서 마음에 찜을 했다. 작정을 하고 가서 별 포즈는 다 취하고 소품은 소품대로 다 쓰면서 사진을 100장쯤 찍은 것 같다. 오늘은 엄마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아서 나는 기분이 상당히 들떴다.
'더그림'에서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고 패러글라이딩장에 도착했다. 코스를 선택하는데 나는 촬영 없는 기본 코스를 했다. 두 번째 타는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번 패러글라이딩의 목적은 내가 아니라 엄마의 행복이었다.
직원: "어머니는 어떤 코스로 해드릴까요?"
나: "엄마는 스페셜 코스(제일 비싼 것)로 해주세요."
엄마: "아니야~ 엄마 것도 그냥 싼 거 해. 기본 코스로 해. 엄마 30분 동안 안 타도 돼."
나: "음.. 그럼 스페셜 말고 상승기류 코스(두 번째로 비싼 것)로 해주세요."
엄마는 픽업트럭을 타고 올라가는 동안 두어 번이나 재차 '엄마 제일 비싼 것 말고 두 번째 비싼 것' 선택한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나는 그냥 스페셜로 밀어붙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언제 또 온다고. 울 엄마도 '스페셜'한 거 할 자격 있는 사람인데.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내가 먼저 이륙했고, 착륙 후 하늘을 보니 저기 보이는 점이 엄마일 것이라고 지상 직원이 말해주었다. 착륙장에 가까워지는 엄마가 하늘에서 '우와~~~ 신난다~~~' 하고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엄마 마음속에 있는 답답함과 걱정들이 그 순간만큼은 사라졌길 바랬다. 평생을 살며 새카맣게 탄 속이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물들길 바랬다.
착륙한 엄마. 굉장히 상기된 상태로 신이 난 엄마.
무사히 착륙한 엄마는 상승기류 코스에 포함되어있던 동영상 촬영본을 직원에게 전해받고 내게 보여준다.
"작은딸~~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고마워~~ 우리 딸 덕분에 별구경 다하네. 앞으로도 좋은 데 가서 신나게 놀다 오자~~ 나 닮아서 예쁘지? 고맙지? 맨날 지가 이쁘다고 하는데 사실은 엄마 닮아서 이쁜 거야.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