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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an 27. 2023

살면서 사람 살릴 일이 없길 바라지만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아시나요?

자동심장충격기(aka 제세동기) 사용법은요?

저는 둘 다 할 줄 몰랐습니다.



남자들은 보통 군대에서 기본적으로 배운다고 들었고요.

요즘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제가 학교 다닐 시절에는 한 번도 기회가 없었고 성인이 되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지하철역을 이용할 때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자동심장충격기를 볼 때마다 생각했어요.

'저건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사용법을 모르는데...

혹시 누가 쓰러지면 저걸 사용하라고 하던데..

괜히 서투르게 나서지 말자.

사용법 아는 사람이 쓸 테니 나는 근처에서 상황만 보고 소극적으로 도움만 줘야지.'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은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내 일상생활에서 보는 물건이 아닌 것 같은.

TV 속 <외과의사 봉달희>나 <뉴하트>,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만 봤던 기계 같잖아요.

의사 선생님들이랑 간호사 선생님들이 여럿 붙어서 "200줄 차지, 물러서! 샷!" 해야 할 것처럼.



나는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니고 심지어 저 기계를 사용할 줄 모르고,

사용하고 싶지가 않아요.

무서우니까요.

뭐라도 잘 못 될까 봐요.

그러다 내가 책임을 지게 될까 봐요.




벌써 지난해가 된 2022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라지고 첫 번째 맞는 핼러윈 행사.

국민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과 슬픔, 트라우마를 만들었던 끔찍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화면 속 뉴스에 흐릿한 블러처리가 된 면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두 힘없이 늘어져 있고,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랄 것도 없이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구조를 하던 장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지만
앞으로 비슷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장면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는 항상 남들보다 0.5% 정도 더 관심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살았고요.

연말연시 훈훈한 익명의 기부 사연이나 쓰러진 시민을 도운 퇴근길의 간호사 등이 등장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시울이 붉어지곤(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요) 합니다.

그래서 많지는 않더라도, 크지는 않더라도,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인 0.5%의 도움을 주며 살아왔어요.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후에는 심폐소생술에 큰 관심이 생겼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후여서인지, 지자체에서 발 빠르게 심폐소생술 교육 프로그램을 짰더라고요.

바로 신청을 하고 오늘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저는 참가자들 중 가장 첫 번째로 교육장에 도착했어요.

이름표를 달고 잠깐 목을 축이고 강사님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론 교육을 듣고 그 후에는 실습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환자가 발생하면 의식확인을 하고,

의식이 없으면 119에 직접 신고를 하거나 근처에 있는 특정한 사람의 인상착의를 언급하며 신고 요청을 합니다.

아무나 신고해 주세요 하면 아무도 안 하기 때문이거든요.

빨간 옷 입은 여자분, 신고해 주세요. 검은 모자 쓴 남자분, 신고해 주세요. 하고 특정해야 합니다.

그다음 환자의 호흡이 있는지 확인한 후 호흡이 없을 시 가슴압박을 시행합니다.





가슴압박은 정말 강하게, 쉬지 않고 해야 합니다.

모형 마네킹으로 실습을 할 때는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압박을 하라고 합니다.

상당히 깊은 곳에 딸깍 버튼이 있어서 강하게 눌러야 합니다.

1분에 100번~120번을 시행해야 해요.

상당히 빠르고 강하게 해야 해서 손에 멍이 드는 느낌이고 숨이 벅찬 느낌이 금방 옵니다.



그렇지만 몰입해서 실습을 합니다.

이 마네킹이 정말 환자라면?

나에겐 손에 멍이 들 뿐이지만 이 시간이 환자에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유명을 달리하는 시간이라면?

이 생각을 하니 멈출 수 없었어요.




가슴압박 실습이 끝난 후에는 자동심장충격기(제세동기) 사용법을 배웠습니다.

사용법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합니다.

심지어 전원을 켜면 안내 음성이 나와 따라서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선 가슴압박을 교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가 있고요.

교대자가 가슴압박을 하는 동안 저는 자동심장충격기의 전원을 켜고 안내 음성에 따라 환자에게 패드를 붙입니다.

2개가 있고요. 붙이는 위치는 패드에도 그림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 후 "떨어지세요" "물러나세요" 등의 안내 음성이 나오면 모두가 환자에게서 손을 떼야합니다.

기계가 환자의 심장 박동을 분석해야 해서요.



그 후 분석이 끝나면 "제세동 필요. 충전 중"과 비슷한 안내 음성이 나옵니다.

그때는 쉬지 않고 다시 가슴 압박을 시행합니다.



그러다 충전이 완료되면 큰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충전 완료. 환자와 떨어지세요. 충격 버튼을 누르세요" 같은 음성이 나옵니다.

이 때도 모두가 환자에게서 손을 뗍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댄 사람이 전기 충격을 함께 받습니다.

모두 손을 떼면 충격 버튼을 누르고, 그 후 바로 다시 가슴 압박을 시작합니다.



비록 마네킹을 두고 실습을 했지만 진짜 환자가 눈앞에 쓰러진 것처럼 제 심장이 더 쿵쾅대고 눈물이 날 듯하며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배우고 나니 무서운 마음도 여전히 있지만, 기계 작동 자체는 생각보다 쉬우며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크게 들었습니다.





살면서 사람 살릴 일이 없길 바라지만

만약 그런 순간에 맞닥뜨린다면


두려움을 이겨보려고요.

구해보려고요.

살려보려고요.

한 번, 나서보려고요.



아래는 자동심장충격기의 사용법입니다.

2분 56초예요.

한 번만 봐도 실전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사용법입니다.

나의 2분 56초가 누군가의 56년을 살릴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iZtrjdwY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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