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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Feb 07. 2023

분필 홀더의 노하우

"선생님, 지금 쓰시는 분필홀더요. 분필 안 밀리나요?"


"원장님, 안 그래도 맨날 밀려요. 그래서 쓸 때마다 샤프처럼 매번 분필 앞으로 당겨서 써요."


"그렇죠? 이거 쓰세요."


"오!! 감사합니다!!"


"제가 전에 쓰던 건데, 저도 맨날 분필 밀려서 새로 샀던 거거든요. 지금은 또 다른 거 쓰고 있어서 이거 안 쓰니까 선생님 쓰세요."


"감사합니다..!"





원장님은 내 수업을 직접 들으시진 않지만, 내가 알파문고에서 산 싸구려 분필홀더를 보셨나 보다.





그리고 본인이 전에 쓰던 고급 분필홀더를 주셨다.

원장님은 알파문고 분필홀더가 수업에 끼치는 악영향을 노하우로 알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분필이 밀리는 것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원장님의 분필홀더 덕에 나는 앞으로 분필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노하우라는 건 대단하고 거창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매우 중요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예를 들면 팀의 막내들이 보통 회식 장소를 섭외하는데, 회식하기 좋은 식당 리스트도 노하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내가 여의도에서 회사를 다닐 때 이야기이다.

동기들 사이에서 엑셀 파일 하나가 돌고 돌았다.

서여의도와 동여의도에서 회식하기 좋은 식당들이 쭉 정리된 파일.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요리의 종류도 적혀 있으며 분리된 룸이 있는지 여부, 1인당 예상 예산까지 적혀 있었다.



이러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로 정리하는 데는 많은 리소스(시간이든 노력이든)가 필요하다.

회식 엑셀 파일로 인해 절약한 리소스는 업무를 하는데 투여하든 휴식을 취하는데 투여하든 직원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어떤 현장에서든 노하우는 쌓인다.


우리 학원은 2주에 한 번씩 주간테스트를 본다.

지난 2주 동안 배운 내용들을 총망라하여 문법과 독해 영역으로 테스트한다.

가끔 5주가 있는 달이 있는데, 그런 주에는 잠시 진도를 멈추고 아이들 책 검사를 싹 하면서 빠진 부분을 채워 넣어 준다.

 

중2반 수업이 끝나면 중2 아이들은 자습실로 넘어가서 그날 학원에서 끝내고 가야 하는 과제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1반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온다.

고1반 독해 수업은 모의고사 연습을 위해 하나의 지문당 1분 30초를 재면서 푼다.

그때 문제풀이를 시켜놓고 잠시 나가서 중2반 아이들이 과제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또는 가끔은 이때 부리나케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수업 루틴의 변화나 시간 활용도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모두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들이니까.



그러나 담당자만이 알고 있는 '현장의 노하우'는 서류로 정리되기 힘든 경우도 있고 인수인계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허례허식의 인수인계 자료보다는 이렇게 '손때 묻은 노하우'가 잘 전수되게끔 하는 것이 관리자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다.



우리 학원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받은 인수인계 자료라고는 딱 한 장 밖에 없었다.

시간대별 수업 스케줄.

5시부터 6시 15분까지는 독해 수업, 5분 쉬는 시간 후 6시 20분부터 7시 30분까지는 문법 수업.

내가 후임으로 들어가기로 한 반의 선생님이 그만두시기 전에 한두 번 청강을 할 수 있었으면 수업 진행에 적응이 더 빨랐을 것 같다.

가끔 강사 커뮤니티 글을 보면 선생님 교체 시 후임 선생님이 청강할 수 있게 해주는 학원이 있다고 한다.

물론 수업하는 선생님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동영상으로나마 찍어서 다음에 오시는 선생님이 보실 수 있게 준비하면 어떨까 싶다.



그 외 여러 가지 학원의 시스템이나 운영방침은 원장님께 구두로 설명을 받았다.

강사 업무일지나 아이들 알림장 서식은 심지어 학원 데스크 PC에서 알아서 찾아서 썼다.

그때그때 필요한데 나에게 없는 자료는 원장님께 말씀드려 USB를 받아 일회성으로 갈증을 해소한다.

동사의 3단 변화나 문법 파트별 연습문제, 그리고 위에서 말했던 공동 서식은 모든 강사들이 함께 자주 사용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따로 묶어서 데스크 PC에 [공동서식] 폴더에 저장해 두고 어떤 강사가 오든 접근 및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두면 모든 사람의 리소스가 아껴진다. 

심지어 원장님도 내가 USB를 달라는 통에 집중력을 빼앗기는 1분의 시간이라도 더 값지게 쓸 수 있다.



어제 썼던 글처럼 나도 언젠간 내 거 할 텐데, 그때 여러 가지 행정, 사무 업무들을 최대한 시스템화하는 것이 좋겠다.

매번 반복되는 작업이나 중요하진 않은데 해야 하는 업무들에게 많은 리소스를 빼앗기지 않도록.






사진 출처 tvN 일타스캔들 공식 홈페이지



요즘 보는 드라마 <일타스캔들>의 주인공 역할인 수학 1타 강사 최치열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제 별명이 뭔지 아세요? 1조 원의 남자. 제가 1년에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약 1조 원에 달합니다. 그럼 제10분의 가치는 약 1700만 원이 되죠."


나도 원장이 되면 1조 원의 원장까진 아니겠지만 값진 나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스템화, 모든 원장의 꿈!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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