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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Feb 16. 2023

한 번의 이별과 한 개의 마카롱


일주일이 마무리되어 가는 목요일입니다. 


오늘 퇴원생이 한 명 발생했어요. 


매 번 겪는 일이지만, 겪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학생의 퇴원이 아닐까 합니다. 






주아(가명)는 우리 학원에서 국어, 영어, 수학을 모두 듣는 학생입니다. 


근데 오늘 수업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 학원에 안 오는 거예요? 


주아는 방학 스케줄 기준으로 월. 수. 금은 우리 학원 수학 수업을 듣고요. 


화. 목. 토 1시부터 3시 반까지 국어를 듣고, 3시 반에서 4시 반 까지는 자습실에서 조교 선생님께 채점받고 영어 단어 시험을 보고요. 


4시 반부터 7시까지 저와 영어 수업을 듣고 집에 가요. 


그러니까 제가 2시 반쯤 출근하면 주아는 이미 국어 선생님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상태이죠. 


즉, 지각을 할 리가 없는데 안 오길래 원장님께 혹시 연락 온 것이 있나 여쭈어 봤습니다. 


원장님 역시 국어 수업도 듣는 주아가 아직까지 안 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확인해 보셨는데요. 


주아 어머니께 연락이 왔더라고요. 


"원장님, 주아 수학 학원을 바꾸면서 시간이 안 맞아서요... 아쉽지만 영어도 다니기 힘들 것 같습니다~ㅜㅜ"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주아가 지난주에 우리 학원 수학 수업을 그만두었대요. 


그래서 다른 수학 학원을 가게 되었는데 해당 학원 시간표를 맞추다 보니까 영어랑 겹쳐서 어쩔 수 없이 우리 학원 영어도 그만두게 된 거라고... 


제가 뭔가를 잘 못 해서 퇴원생이 나온 건 아니지만 마음은 영 착잡합니다. 


또, 주아는 내심 마음이 많이 가는 학생이었거든요. 


물론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티 내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주아를 많이 예뻐했어요. 


학원은 제 일터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갈 때도 있지만 때론 지칠 때도 있잖아요? 


그때마다 주아가 있어서 마음을 다잡았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수업을 열심히 듣고, 숙제도 잘해 오고, 혹여 못 해온 숙제가 있으면 자진납세 해서 다음 시간까지 꼭 해오겠다 약속하고 지키는 학생. 


그리고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쌩 하고 집에 가기보다는, 수업과 관련 없이 저와 한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고 가려고 다른 학생보다 느릿느릿 가방 짐을 싸던 주아. 


어쩌면 주아가 저를 좋아했을 수도 있지만 제가 오히려 주아에게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학원의 생리가 그렇듯, 학생이 미리 예고하고 그만두는 비율은 아주아주 낮고요. 


어제 까지도 멀쩡히 나왔던 학생이 하루아침에 증발하듯 학원을 끊고 안 나오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사실 지난해에도 제가 담당하던 아이들이 수학 선생님과의 마찰로 인해 수학을 그만두는 바람에 다른 학원 수학 스케줄 때문에 영어까지 같이 그만두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번 주아와 비슷한 케이스지요. 


이렇게 학생들이 나가게 된다는 소식을 원장님께 전해 들으면요. 


저는 아주 못나고 속 좁은 강사가 됩니다. 왜냐고요?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잘못해서 애들이 나간 건 아니니까...


못 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스스로가 좀 싫어집니다.




내가 원장이 아니니까,
나는 어차피 월급 받는 강사니까
학생이 나가도 나한텐 타격 없다.

오히려 애들이 적어지면
나는 편하니까 좋지.

나랑은 애들이 잘 맞았는데
수학 쌤 때문에 나간 거잖아. 



에휴.. 정말 솔직히 좀... 못났다는 단어 외엔 생각이 안 납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아의 퇴원 소식을 듣고 저런 생각이 떠올라서 괴롭고 싫었습니다. 






주아가 있던 반 말고 제가 가르치는 다른 반이 또 있습니다. 


주아보단 한 살 어린 친구들인데요. 


이 반에 저를 힘들게 했던 효영이(가명)가 있습니다. 


효영이는 평소 텐션이 아주 높고 목소리도 커요. 


그리고 또래에 비해서 영어를 늦게 시작해서 아주 많이 노력이 필요한 친구입니다. 


중학생이지만 dive, were 같이 단순한 단어도 잘 읽지 못해요. 


학습 수준뿐만 아니라 태도에서도 고칠 점이 있는 친구였어요. 


제가 프린트물을 찾으러 잠시 교무실에 다녀오면 교실 불을 끄고 문을 잠가서 제가 못 들어가게 하는 등, 짓궂은 장난을 자주 쳤거든요. 


엄하게 화도 내고 장난스럽게 넘어간 적도 있었는데 아슬아슬 선을 넘을 듯 말 듯 한 장난들에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어떤 글에서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의 팁을 얻었어요. 


말 그대로 단순하게 "선생님은 OO이의 OOOOO 한 행동들이 불편하고, 수업에 방해가 되니까 다음부터는 하지 말자." 이렇게 말하래요. 


저도 따라서 했더니 다음번부터는 효영이가 정말 장난을 안 치더라고요? 


기특해서 더 예뻐해 주고 조금만 잘해도 오바하면서 박수를 쳐주고 많은 칭찬을 해줬어요. 


그렇게 3주가 지났거든요. 


오늘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편의점에 다녀온 효영이가 갑자기 저보고 손을 내밀어 보래요. 


손을 내밀었더니 제 손에 수줍게 올려주는 작은 비닐봉지. 


저는 효영이가 쓰레기를 저한테 주는 장난을 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마카롱인 거예요. 





"효영아, 이거 뭐야? 쌤 주려고 사 온 거야?" 


"네..." 


"헉. 효영아, 너가 돈이 어딨 어서 쌤 거를 사 왔어~~ 우와!!!!! 쌤 진짜 대박 감동 먹었어!!! 쌤 이거 당장 사진 찍어야겠다. 와 대박 대박!!!" 



평소엔 장난기가 넘치던 효영이는 제게 처음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러웠던지 마카롱을 주는 순간만큼은 볼이 다 빨개졌습니다. 






주아와의 예고 없는 이별로 마음이 구멍 났는데, 그 구멍을 효영이의 마카롱이 딱 채워줬어요. 


오늘도 이렇게 아이들 덕에 힘을 내 봅니다. 



한 번의 이별, 그리고 한 개의 마카롱.



너무 감동한 나머지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떠난 빈 교실에서 한번 더 사진을 찍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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