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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Feb 21. 2023

다 쓴 치약 짜기, 팔찌 차기, 식탁 위치 바꾸기



다 쓴 치약 짜기, 팔찌 차기, 식탁 위치 바꾸기.



세 가지 일상적 활동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찾으셨나요?


바로 혼자 하기엔 드럽게 힘든데 둘이 하면 세상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다 써가는 치약, 왠지 한번 더 강하게 눌러서 쭉 짜면 웬만큼 나올 것 같은데.


혼자 양손으로 힘을 주어서 누르면 치약이 나와요.


그럼 그 치약을 칫솔에 묻히려고 한 손을 떼서 칫솔로 가져가면 얄미운 치약은 메롱하며 혓바닥을 다시 속으로 쏙 넣어요.


으. 분하다.


그래서 다시 꾹 눌러서 치약을 비틀어 짜내요.


다시 칫솔을 들어요.

다시 치약은 들어가요.

무한 반복이에요.


화! 가! 난! 다!


둘이 하면 2초 컷!


"자기야, 치약 짜줘."

"응."


치약을 세게 누르면 2명이 쓸 만한 양이 나와요.


남편이 누르면 저는 우리 두 명의 칫솔을 각각 손에 들고 항복하며 밀려 나오는 치약을 거두어가요.


두 인간의 완벽한 승리.





팔찌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팔찌 차려면 진짜 미치고 팔짝 뛰어요.


일단 한 손의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부들부들 거리며 팔찌의 갈고리를 여는 것부터 고난의 시작입니다.


겨우 갈고리를 열면, 중력의 힘으로 바닥을 향해 달랑거리는 반대편 고리를 갈고리에 엮어야 합니다.



뉴턴이 사과나무 옆에 있지 않고
팔찌를 끼우는 사람 옆에 있었어도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을 겁니다.



반대편 고리는 미꾸라지를 손으로 잡으려고 노력할 때처럼 아주 잘도 미끄러져 나갑니다.


고리가 미식축구 선수였다면 상대방 선수에게 절대 안 잡히고 골대 기둥을 향해 돌진하는 MVP가 아니었을까요.


옆에 친구가 있다면 5초 안에 해결할 수 있는 팔찌 차기.


앞으로 아무리 무인 가게가 유행한다고 해도, 팔찌 가게는 절대 무인으로 운영되지 않을 겁니다.






이상하게 집에서 일부러 식탁을 움직인 적이 없는데 시간이 지나면 식탁이 위치가 처음과는 달리 묘하게 틀어져 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촛대 장식과 주전자, 괘종시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 집 식탁에도 발이 달려서 (사실 식탁에 발은 원래 달려 있긴 하죠..) 제가 외출했을 때마다 조금씩 움직이는 건 아닐지 의심이 듭니다.


걸리지 않을 만큼만 움직이는 거죠.


여하튼 이렇게 틀어진 위치를 다시 잡으려고 하면요.


그냥 한쪽에서 부욱하고 밀기에는 심장이 쫄려요.


세입자 신분이라 집 마루에 기스라도 날까 봐요. 


혼자서 괴력의 헐크처럼 식탁의 중앙을 번쩍 들어 올려서 제자리로 가져다 놓을 힘이 없습니다.


그럼 어떡하죠? 둘이 하면 됩니다.


한 명이 한쪽 끝을, 다른 한 명이 반대편 끝을 들고 움직이면 금방 끝나는 일입니다.






제목엔 글자수 제한 때문에 못 썼는데 하나 더 있어요.


침대 매트리스 커버 끼우기!


혼자 하려면 네 귀퉁이를 돌아가면서 무거운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고, 엉성하게 커버를 끼워야 해요.


한쪽을 끼우면 다른 쪽이 팅-! 하고 퉁겨져 빠지는 일도 다반사고요.


둘이 하면? 대각선 방향으로 먼저 각자 착착 끼우면 이미 매트리스는 꼼짝 못 하게 포박이 되고요.


남은 부분을 손쉽게 끼우면 됩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저는 무교입니다만 아무튼!) 귀는 두 개를 만들고 입은 한 개를 만들었죠.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두 배로 하라고요.


제 생각엔 신이 사람을 한 명 만들지 않고 여러 명 만든 이유도


(2023년 현재 지구의 인구수는 80억 명입니다... 제가 어릴 때 숫자쏭을 읊조릴 때만 해도 분명 "60억 지구에서 널 만난 건, 7! 럭키야!" 였는데... 가사 업데이트가 시급합니다.)


아마 치약을 혼자 짤 수 없고, 팔찌를 혼자 찰 수 없고, 식탁 위치를 혼자 바꿀 수 없고, 매트리스 커버를 혼자 끼울 수 없기 때문의 이유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사소한 일상의 단편도 혼자서 쓰질 못하니 100년 동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서로 도우면서 장편 대서사시로 써보라고요.


뭐 신이 이렇게 니들은 혼자 못 하니 여럿이 하라고 판을 짜 놨는데, "나만 할 수 있는 일", "대체될 수 없는 독보적 존재"가 되려고 아등바등하니까 삶이 피곤한 거 아니겠습니까.


좀 대충 살면 어떨까요.


인류사에 길이 남을 뿅 가는 업적 같은 거 안 남겨도 되지 않을까요.



메롱하는 치약을
쥐어짜는 정도로도
충분히 우리는 서로에게
쓸모를 다 하고 있습니다.





Epilogue...


아무개 독자 : 저는 혼자 사는데... 어쩌죠? 1인 가구예요. ㅠㅠ


김이로 작가 : 걱정 마십시오. 그런 여러분들을 위해 혁신적인 제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쥐어 짜지 않고도 끝까지 사용할 수 있는 펌핑 치약을 사용해 보세요! (PPL 아님!) ☺️☺️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2월 22일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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