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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Feb 22. 2023

아, 이대로 한문철 티비에 등장하는 것인가


오늘은 도시락을 싸서 나가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어젯밤부터 무엇을 싸갈까 고민을 하다가, 밥통에 밥이 거의 다 떨어져서 떡볶이를 싸가기로 했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우리 집 만능 프라이팬인 빨간색 테팔에 밤부터 불려서 전분기가 많이 사라진 떡을 와르르 쏟아부었습니다.


밀떡이나 떡볶이용 쌀떡을 쓰면 더 좋았겠지만, 4층 사는 집주인 할머니께서 새해 기념으로 주신 떡국떡이 소진되지 못한 채 계속 냉동실에 자리하고 있길래 길쭉한 타원형의 그 떡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떡국을 설날에도 안 끓여 먹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 떡은 일부러 생각해서 먹지 않으면 계속 화석처럼 남아 있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떡볶이에 빠질 수 없는 어묵은 역시 네모난 부산어묵이 좋겠지만 이 역시도 없어서 오뎅바(어묵바 보다는 왠지 이 단어가 더 맛깔나게 느껴져요.)에서 꼬치에 3개씩 꽂혀 한 꼬치당 2천 원에 팔리는 동그란 치즈볼 피쉬어묵을 넣었습니다.


떡도, 어묵도, 원래 우리가 알던 떡볶이와는 거리가 먼 모양입니다.


아무렴 어때요. 오늘 떡볶이는 모양이나 맛보다는 그저 수업 중간에 배를 채우는 용도일 뿐입니다.


고춧가루와 가쓰오부시장국, 설탕과 MSG를 눈대중으로 척척 넣고 중간 불로 올려 둔 뒤 샤워를 얼른 하고 나왔습니다.


옷도 갈아입고 화장도 하고, 출근 준비를 다 마쳤을 때쯤 떡볶이도 간간하게 쫄아들었어요.


스테인리스 보온 도시락통에 양껏 담아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T맵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오늘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출근을 했어요.


보통은 좋아하는 노래를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들으며 가는데, 때때로 이렇게 라디오를 들으면 나도 몰랐던 취향의 노래를 발견하는 맛이 있습니다.


SBS 107.7 파워 FM만 듣는데요. 오전 10시에는 김창완 아저씨가 진행을 하고요.


오전 11시에는 박하선의 씨네타운이 흘러나와요.


학기 중에는 퇴근이 늦으니까 보통 웬디의 영스트리트를 들으며 오게 되는데 방학이라 시간이 앞당겨져 새로운 DJ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거의 다 도착을 해 갈 무렵이었어요.


출근길이 이제 한 300m도 채 남지 않았는데 사거리가 2개가 연달아 있거든요?


그중 먼저 나오는 사거리에서는 항상 우회전할 때 횡단보도 보행 신호가 걸려요.


왜 출근하다 보면 맨날 같은 시간, 같은 길로 가니까 거의 어디에서 신호가 걸리고 어디에서 그냥 통과할 수 있고 어디에서 과속 카메라가 찍고 있는지 다 알잖아요.


최근에 우회전할 때 무조건 일시정지를 하고, 보행자가 있으면 절대 주행하면 안 되고, 보행자가 없어도 아주 서서히 서행하면서 주행해야 하는 법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요즘 꽤나 신경 쓰면서 운전을 하거든요.


이번에도 그래서 우회전 깜빡이를 넣고, 횡단보도 보행 신호가 켜져 있고 보행자도 있길래 일시 정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차는 완전히 멈춰 있었어요.


아니 근데...! 갑자기 조수석 쪽으로 어떤 사람이 아주 가깝게 걸어오고 있는 거예요?


저는 멈춰 있는 상태고요.


제가 운전하는 차가 횡단보도 중간에 걸쳐 멈춰 있는 거라면 불편하게 돌아가야 하니까 보행자가 가까이 붙어서 걸을 수도 있겠지만요.


횡단보도에 걸치지도 않고 아예 우회전 시작도 안 했는데 아주 가까이 밀착해 오는 거예요?!!


찰나의 순간에 뇌리에 생각들이 팟칭- 하고 스쳐갔습니다.



아니 이거 뭐지?
신종 사기인가?
나는 멈춰 있었는데
일부러 가까이 와서
몸을 부딪히고
합의금을 요구하는
보험 사기단인가?

아니 뭐지??
왜 점점 더 가까이 오지???
아니 이러다 차 옆에 붙겠는데...?!???



그리고 그 걱정이 아깝지 않게(?) 예상 그대로(?) 의문의 보행자는 갑자기 제 조수석의 문을 덜컥거리며 열기를 시도하는 게 아니겠어요???



'와.... 조졌다.... 뭐냐 이거...

부딪혔다고 주장하는 건가?

아니면 사복경찰 뭐 그런거???

오.. 신이시여.


오늘 저 떡볶이는 먹지도 못하고

경찰서에 가게 되는 것인가....


아니 닿는 느낌도 안 났는데??

아니 애초에 나는 차를 멈추고

일시정지 하고 있었다고!!!' 





주행 중이어서 도어락이 걸려있었으니 보행자는 조수석 쪽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손이 덜덜 떨렸고, 일단 보행자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너무 무서울 것 같으니까 창문만 내려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야 하나?


고민을 하는 동시에 등골이 쩌릿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보행 신호는 이미 끝났고 저는 안전하게 우회전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지만, 계속 멈춘 상태였습니다.


백미러를 보니 뒤에 다른 차량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계속 멈춰 있다간 교통 흐름을 방해해서 뒷 차량에게 피해를 끼칠 것 같았습니다.


공황 상태에 빠질듯한 두려움이 엄습하는데, 갑자기 의문의 보행자가 차량 뒤쪽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뭐지? 내가 안 나오니까 차 넘버판을 찍으려는 건가?

신고하는 건가?

 비상 깜빡이를 켜고 일단 나가야 하나?

뒤에서 아무리 다른 차가 온다고 해도, 차량을 섣불리 횡단보도 쪽으로 움직였다가 내가 잘못이 없는데 뒤집어쓰는 거 아닐까?'



차갑게 굳은 몸과는 반대로 머리는 뜨겁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행자의 행방을 눈으로 좇았습니다.


그녀는 뒤따라 오던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아.


휴.


아휴...


어우....!!!!! 어우 나 진짜!!!!


 그녀는 그저 만나기로 한 일행의 차를 헷갈렸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탄 차가 본인의 지인 차량인 줄 알고 다가와 탑승하려 했던 겁니다.


휴.


무사히 점심에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2월 24일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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