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언니 가져다가
애기 가지고 놀라고 하면
싫어할까?
헉. 뜨악. 이건 27년 전에 내가 가지고 놀던 레고다.
이게 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걸까?
본가에 가서 소파에 누워 빈둥대던 어느 날.
엄마는 안방 베란다 안쪽 창고에서 사부작거리더니 손에 꽤나 힘을 준 채로 커다란 노란색 플라스틱 통을 들고 뒤뚱거리며 거실로 걸어왔다.
처음엔 매실액을 담가 둔 통인가 했다.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병 모양이 아닌 데다가 어디선가 낯이 익은 통이었다.
이내 엄마가 내 눈치를 보며 뚜껑을 개봉했을 때, 내 턱은 지구의 중력을 5배나 느끼는 것처럼 아래를 향해 빠르게 내려갔고 덩달아 입은 커다란 동굴을 만들었다.
엄마, 이게 어떻게 아직도 집에 있어?
이 레고의 역사는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이모할머니 중 한 분은 조카며느리였던 우리 엄마를 꽤나 예뻐하셨다.
(물론 지금도 건강히 살아 계시며 여전히 우리 가족을 예뻐해 주신다.)
그때 이모할아버지가 블록 공장에 다녔다고 하셨는데, 당시 판매할 수 없는 약간의 하자가 있는 B급 제품을 직원들에게 싸게 주셨다고 한다.
마음씨가 우주처럼 넓은 이모할머니는 당신의 손주 몫을 챙기고도 조카며느리 자식들 줄 것까지 살뜰히 챙기셨다고.
기껏해야 스케치북에 크레용으로 색칠이나 하고 놀고, 흙모래터에서 얼음땡이나 하고 놀던 언니와 내게는 이 레고가 별천지와 같았다.
레고블록 회사가 마케팅 메시지로 강조하는 것처럼, 정말 이 레고는 창의력 발달에 '왓따'였다.
만드는 대로 새로운 모양이 나오고, 벤치도 만들었다가 정원도 만들었다가.
만들면 만들수록 새로웠고 사람모양 블록이 있어서 스토리텔링까지 지어내게 하는 위대한 레고!
근데 그 레고가 왜 지금까지 엄마집 창고에 있는 거냐고...
없이 살던 시절, 귀한 레고가 엄마에겐 27년을 보관할 만큼의 사무치는 장난감이었나 보다.
지금 우리 언니의 딸, 그러니까 내 조카는 집에 장난감이 넘쳐 난다.
대부분의 ‘요새 애들’이 그럴 것이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시대가 아니니까.
게다가 당근마켓이나 장난감 무료 나눔은 얼마나 활발하게요?
촌스럽고 낡은 레고를 품에 안고 이사 갈 때도 챙겨 왔던 엄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락스물로 박박 닦고 여러 번 헹궈서 햇빛에 바짝 말린 이 레고에서 엄마 품의 냄새가 난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