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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May 19. 2023

혹시 다른 과목 성적은 어떤지 물어봐도 될까?

내 능력 밖이었다. 

오늘 테스트를 본 신규 학생을 돌려보냈다. 

현재 수능이 딱 6개월 남았는데, 영어 3등급이 필요하다고 한다. 


문제는...






[Everyone in my class gathered on time for the field trip.]


“자, 이 문장 틀려도 좋으니까 대략적으로 해석해 볼까?”

“어.. 잘 모르겠어요. 제가 영어를 정확하게 몰라서요..”

“그렇구나, 그럼 혹시 이 문장에서 주어랑 동사 찾을 수 있을까?”

“음... my가 주어? class가 동사요?”

“아하, 동사가 뭔지 혹시 설명할 수 있겠니?”

“어... 움직이는거요?”

“응,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혹시 조금이라도 해석할 수 있을까?”

“음... 모든... 내 수업.... 모르겠어요.”



위 문장은 중학교 2~3학년 수준의 교재에 나와 있는 문장이었고, 학생이 모르는 단어는 gather와 field였다. 

gather(....도 물론 알아야 하지만)는 그렇다 치더라도 field는 초등학교 영단어다. 


field trip을 현장학습으로 해석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말이 안 되어도 ‘들판 여행’이라고는 했어야 한다. 


학생이 사전 상담에서 베이스가 없는 학생이라고 해서 고1 듣기 1개, 독해는 혹시 몰라 중-고등 것을 준비해 두었는데 상담 첫머리에 골랐던 중등 과정의 저 문장 딱 하나를 해석하게 시킨 뒤 더 이상 상담의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보통 상담에서 본인을 노베(노베이스의 줄임말)라고 소개하는 학생들은 4~5등급이 많다. 


6등급부터는 학원이든 과외든 인강이든 그냥 안 듣는다. 


공부의 길 말고 다른 쪽의 꿈을 펼치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보기 어렵다.


근데 이 학생은 정말 말 그대로 쌩노베이스 학생이었던 것이다. 


시험을 보면 직접 풀어서 맞는 문제가 45개 중 단 하나도 없는..






“혹시 다른 과목 성적은 어떤지 물어봐도 될까?”

“국어는 7~8등급 정도 나와요. 수학도 낮긴 한데 인강 듣고 하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는 돼요.”



학생이 상처는 받지 않되 각성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동안 착실하게 공부해 온 양을 6개월 안에 마스터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국어, 수학, 탐구 과목이 안정적으로 1~3등급이 나오는 상태여서 영어에 올인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채찍질을 해서라도 널 가르쳐보겠다, 


하지만 현재 다른 과목들도 아주아주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이다, 


하루에 공부를 12시간을 한다 해도 4개 과목으로 나누면 3시간 정도인데, 3시간씩 남은 180일을 한다고 7등급에서 3등급 같은 유의미한 성적 향상이 나는 어렵다고 본다... 


내가 그걸 가능케 하는 강사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위대한 사람이 못 되고, 모쪼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입장이니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수능까지 힘내 보길 바란다...






솔직한 말로 학생을 받으면 나야 돈을 버니 좋지만 이 학생에게는 그렇게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뛰어난 선생님이 이 학생을 맡아 6개월 동안 가르친다면 올 11월 수능에서 이 학생이 얼마만큼의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도 정말로 궁금하다. 


수능 영어는 영어를 단지 한글로 해석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역한 한글을 본인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게 쉬운 뜻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복잡한 수능 영어 지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직역이 나온다. 



[나는 지금보다 20시간 전이자 태양이 하늘에 가장 높이 뜬 시간에 나의 생물학적 탄생을 야기한 이성을 가진 유기체들와 함께 광합성과 물의 복합 작용으로 자라난 탄수화물 복합체를 얼굴에 위치한 가장 큰 텅 빈 공간 속으로 밀어 넣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나는 어제 점심에 부모님과 쌀밥을 먹었다.] 라는 뜻이다. 



결국 영어 단어를 외우게 시키고 구문 독해를 가르쳐 줘도, 전자의 직역같이 해석을 할 수는 있으나 후자의 의역같이 스스로가 뭔 소린지 알아듣는 과정은 국어 베이스와 문해력이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학생들이 날 찾아온다면 


돌려보내야 할지, 

솔직하게 말했음에도 학생은 가르쳐달라 했으니 그냥 돈 번다 생각하고 가르쳐야 할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니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해야 할 것인지.... 



성적을 올려 줄 자신이 없어서 학생 받기를 거절한 나는 비겁한 강사인 걸까? 


아직도 어렵다. 현명한 판단과 조언을 하고 싶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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