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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May 21. 2023

여기서 대치역으로 가려면 어디로 나가야 해요?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이 있고 낯선 곳에 뚜벅이로 가도 지도 어플이 있기 때문에 요즘은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길을 물을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게 통하지 않는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상가 안!


잠실 지하상가나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복잡하고 크지만 대신 출구 번호가 규칙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기준과 순서와 간격으로 되어 있다.


즉, 조금만 발품과 눈품을 팔면 원하는 목적지로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반면에 은마 종합상가는?

규모도 대단한데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곳이어서 처음 가보는 나에게는 미로가 따로 없었다.


상가 안의 구조가 규칙적인 정방형도 아니고 A동과 B동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안에서는 또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은마상가에서 유명한 음식들을 포장해 가려고 출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운 좋게 찾던 3개의 가게 중 2개의 가게를 바로 마주쳤다.


튀김과 국물떡볶이로 유명한 ‘튀김아저씨’와 떡꼬치와 뻥스크림으로 유명한 ‘만나분식’.


둘 중 고민하다가 튀김이 당겨서 ‘튀김아저씨’에서 이것저것 포장을 한 뒤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 만두집은 혹시 어디 있어요?”


“여기서 쭉 직진하시다가 끝에서 좌회전하시고요. 전집이랑 쭉 지나다 보면 세 갈래길 나오는데 거기서도 또 좌회전해서 쭉 가면 보일 거예요. 근데 상가가 복잡하니까 가시다가 중간에 한 번 더 주변에 물어보세요.”





직원이 알려준 대로 중국집, 반찬가게, 전 가게, 수입품 가게 등을 지나다 보니 다행히 헤매지 않고 만두집에 도착했다.


판만두와 왕만두를 한 세트씩 주문하고 어디가 출구인지 살피는데, 도저히 출구를 찾을 수 없어 다시 만두가게 사장님께 질문했다.


“사장님, 여기서 대치역으로 가려면 어디로 나가야 해요?”


“지하철로 가시게요?”


“아, 아니요. 대치역 근처에서 버스를 타야 해서요.”


“어느 방향 가시는데요?”


“양재 쪽으로요.”


“어, 그러면 여기 가게 뒤쪽으로 쭉 나가면 밖인데 거기서 길 건너지 말고 조금만 걸으면 버스정류장 나와요. 거기서 타면 양재 쪽 방향이에요. 버스 타시고 가니까 냄새 안 나게 비닐 꽉 묶어드릴게.”



길을 묻고 알려주는 이 경험이 참 오랜만이었는데 기분이 좋았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이 사회의 일원이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뭔지 모를 소속감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강남역, 수원역 등을 걸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달라붙는 사이비 종교들 때문에 길을 묻는 사람을 아예 못 본 척할 때가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진짜 길을 묻고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만두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게 꽁꽁 싸매 준 봉지, 아니 친절 까지도.





(여담: 내가 주문한 건 김치판만두와 김치왕만두였는데, 집에 와서 봉지를 풀러 보니 김치판만두와 고기왕만두가 있었다. ㅋㅋㅋㅋㅋ 그래도 잘 먹었습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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