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봄이, 뽈뽈이, 토리, 솜털이... 강아지 이름도 고양이 이름도 아니다. 내 주변 사물에게 붙여 준 이름이다. 흰봄이는 2012년에 내가 처음으로 산 디지털카메라에 붙여준 이름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노래도 듣고 사진도 찍는 것이 익숙한 요새 어린 친구들은 디지털카메라, MP3가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를 것이다.
적어도 1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은 있었지만 화소가 좋지 않아 디지털카메라를 많이들 썼다. 온라인 마케팅 회사에서 첫 인턴 근무를 마치고 월급을 모아 샀던 파나소닉 루믹스 디지털카메라는 흰색이었고, 봄에 구입을 했다. 예쁜 봄 같은 사진을 많이 찍고 싶어 이름을 흰봄이라 지어줬다.
약 1년쯤 전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흰봄이를 중고나라에 팔았다. 팔당댐 근처로 라이딩을 자주 나가는 40대 추정되는 (구매자 카톡 프사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남성분의 품으로 흰봄이를 떠나 보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거금을 주고 샀던 제품이라 마음이 좀 쓰리기도 했지만, 서랍 속에서 햇빛도 못 보고 있는 것보단 새 주인을 찾아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샀던 파나소닉 루믹스 lx5, 흰봄이
뽈뽈이는 우리 집 로봇청소기 이름이다. 뽈뽈거리면서 구석구석 어찌나 청소를 잘하는지. 제 몸의 몇 백배나 되는 공간을 불평불만도 없이 슬슬 움직이며 먼지를 쓸어 담는다. 오른쪽에 달린 삼발이 브러시가 로봇청소기 가슴 안쪽으로 먼지를 모으는 모습은 귀여운 꽃게의 집게발 같기도 하다.
오늘도 묵묵히 청소하는 뽈뽈이.
결혼 직전, 신혼집을 구하기 전에 미리 사둔 혼수 용품을 본가에 두었을 때 이야기다. 작동이 잘 되나 테스트 겸 본가에 며칠간 로봇청소기를 작동시켜 두었다. 나는 외출을 했고베란다 단차를 인식 못한 로봇청소기가 고꾸라져 있는 것을 퇴근한 엄마가 발견했다.
"꼬맹아~ 혼자 여기 넘어져서 있었냐~ 가여워라 엄마가 구해줄게"
엄마는 청소기를 꼬맹이라 부르며 넘어져 있는 로봇청소기를 제자리에 놓아주었다고 했다. 신혼집이 구해져 청소기를 챙겨가려 하자 엄마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너도 나가서 집이 심심한데 꼬맹이는 두고 가면 안 되겠니"
이름을 붙여주면 사물과도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관계는 감정을 피워내게 된다. 오늘도 우리 옆에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며 자리를 지키는 자동차, 노트북, 로봇청소기,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