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로 Sep 03. 2023

와인 코르크가 부서졌을 때

이거 어쩌지? 코르크가 부서졌어.


어젯밤 남편은 와인을 따고 나는 안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 중국산 전동 와인 오프너가 생긴 이후로부터는 와인을 따는 것이 정말 별 것 아닌 일이 되었다.


그전엔 심혈을 기울여 평형을 잡은 뒤 스크루를 코르크 안으로 돌려 넣어 지렛대를 걸쳐 꾸역꾸역 뽑아내다가 실패한 적이 종종 있지만.


전동 오프너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데 평소 보다 오래 걸린다 싶었다.


이쯤 되면 뽕! 하면서 경쾌한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이내 코르크가 부서져서 우리의 와인은 지금 미개봉 중고 반품이 될 처지라는 비보를 알려왔다.


‘요즘 사람들’은 모르는 걸 물어볼 때 지식in이 아니라 유튜브에 검색한다기에 나도 찾아봤다.


와인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알려준 방법은..... 참으로 원시적이었다!


포크로 한 땀 한 땀 코르크를 코딱지마냥 파내다가, 어느 정도 다 파지면 그냥 안으로 밀어 넣어서 마시란다.


아니 이게 전문가 방법 맞는 건가?


수동 오프너로도 다시 도전해 보고 와인을 수건으로 둘둘 감아 병 아랫부분을 벽에다 퉁퉁 쳐서 코르크가 앞으로 밀려 나오게도 해 봤지만....






명절 연휴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 같은 코르크는 일말의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다.


고집불통. 쳇.


결국 전문가스러운 방법으로 코딱지 아니 코르크를 파냈고 물로 어느 정도 씻어 코르크 가루를 제거한 뒤 병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체를 이용해서 걸러 보았지만 코르크 불순물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세플라스틱처럼 체를 통과해 버렸다.


제길...! 분하다!


코르크 따위에게 질 수 없었던 나는 로빈슨 크루소에 빙의한 채 언니가 언젠가 주었던 순면 다회용 행주를 꺼내왔다.


물티슈에 물을 바짝 말린 것처럼 생긴 이 행주는 언니가 행주로 써도 되지만 거름망 등의 용도로 써도 된다 했다. (안 된다 했어도 날 막을 순 없었다.)



결국 한 톨의 코르크도 이 순면 거름망을 벗어날 순 없었고 난 의기양양하게 와인을 마셨다.





아무도 내 와인을 막을 순 없으셈.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작가의 이전글 아침 댓바람부터 낯선 도시의 찜질방에 오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