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종이 지도를 보고 옆 차에게 길을 물었었는데.

by 김이로

어릴 적 우리 집 첫 차는 3869 넘버판을 달은 흰색 프레스토였다. 그때 가족여행을 가면 아빠는 운전을 하고 엄마는 조수석에서 지도를 펴고 아빠를 도와 길을 찾았다. 휴대폰도 없어서 삐삐를 쓰던 시절이니 지금의 내비게이션 같이 척척 길을 알려주는 전자 지도는 꿈도 못 꿨다.



20141127125045_8jO9Ndwp.jpg?type=f980_654 프레스토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자동차



조수석만큼의 너비를 다 가릴 만큼 커다란 전국 지도와 '부산 260km' 따위가 쓰인 초록색 교통 표지판에만 의존하여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길을 잘못 들면 10km가 넘는 거리를 돌아가기도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신호등과 표지판을 지나고 한 두 곳의 휴게소를 들르고 나면 보통 목적지에 도착했다.





7de4a4b095d3fc8cd24fc2ac56a9ecdcebdbea0155661317ba0787b35a6c5195e0bd7f7f5d72b621332f92024590325a334ac76a895bdd2c04b0d2af14e85bc2e602e918acdd9987ea002f33ca9ef8fd5738d4d130b8f2f3c9a8b6832b5dab47 이렇게 생긴 이정표에만 의지해서 길을 나서던 때가 있었다. /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시간이 흐르면서 자동차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동차 내부에는 모래알 같은 노이즈가 섞인 라디오 소리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연결한 고음질 블루투스 음악이 흘러나오고 네비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기아자동차는 십수 년쯤 전에 해외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를 섭외해 오더니 K시리즈를 성공시키며 한국 자동차의 외적 디자인 수준을 한껏 끌어올렸다.




kia.JPG 이미지 출처 : 기아자동차 공식 홈페이지



심지어 이제는 기름이 아니라 전기로 가는 자동차가 심심찮게 도로와 주차장에 보인다. 이러한 변화들에 더해 또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운전자들은 이제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지 않는다. 버스도 아니고 손을 왜 흔드냐고?



아빠는 운전하다 길이 영 헷갈리면 돌돌이 손잡이를 돌려 수동 창문을 열고 옆 차에게 손을 흔들어서 신호를 보냈다. 옆 차가 신호를 알아듣고 그쪽 차 조수석 창문을 열면 큰 소리로 행선지를 묻고 이 쪽으로 가는 것이 맞느냐고 물어봤다. 여행을 갈 때도 물었고 새 집을 장만해 집들이를 하는 친척네 집을 갈 때 처음 가보는 그 동네에 가서도 물었다. 그때는 그렇게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드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아날로그 지도 위의 어느 지점에 서 있던 우리는 어느 순간 0과 1로 파편화된 디지털 세계로 순간 이동을 했다. 차 앞유리 안쪽에 대형 압축 고무 큐방으로 붙이는 (심심하면 압축이 풀려 툭 하고 핸들 쪽으로 떨어지는) 내비게이션이 나왔고, 그 후로는 매립형 네비는 기본이 되었다. 집 컴퓨터에서 USB에 파일을 담아 차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는 작업이 슬슬 귀찮아질 때쯤 스마트폰과 끊김 없는 통신 기술은 손바닥 만한 핸드폰에 전국 팔도 울릉도의 골목길까지 낱낱이 보여주었다.




옆 차도 보고 표지판도 보고 신호에 걸리면 맞은편에 새로 올라가는 건물은 상업용 건물인가 5층짜리 빌라인가 보던 사람들은 작은 화면 안에 갇혔다. 어디 자동차뿐만인가? 전에는 지루한 지하철에서 눈 둘 곳이 없어 출입문 옆 탈모 병원 광고판을 읽고 앞자리 조는 사람을 구경했다. 가끔 한강이 보이는 구간이나 서울을 벗어나 지상으로 나오는 구간이 되면 빠르게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손에 쥔 네모에 얼마나 빠져 들었는지 주변을 안 봐서 요즘 지하철 광고판에 광고는 없고 텅 빈 하얀 배경에 광고문의 연락처만 덜렁 쓰여 있다.




우리는 이제 운전을 할 때 네비가 있는 앞만 보며 간다. 차선을 바꿀 때만 옆을 본다. 옆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데 내비게이션에서는 처음 가 본 동네의 새로 난 도로까지 알 수가 있다. 내비게이션은 우리에게 길을 찾아 주는 것일까 길을 잃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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