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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Feb 18. 2023

야, 너 지금 100℃인데 안 끓고 뭐 하냐?


아니 김대리,
일을 지금
이렇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당신은 김대리입니다. (당신: 잉?)


당신의 부서장은 화가 난 채로 당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당신: 헐!) 


다음의 3가지 반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직장이라는 정글 속에서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신중히 생각해서 딱 하나를 고르도록 합니다.


1. 아니, 팀장님. 지난번에 제가 이 부분은 문제 생길 수 있다고 분명히 보고 드렸잖아요.

그때 괜찮으니까, 팀장님이 책임 지실테니까 그냥 진행하라고 하셔 놓고 왜 화를 내세요?


2. 아, 팀장님.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아니면 저기 치킨집에서 호프 한잔 하시면서 말씀드릴까요?


3. ......죄송합니다.....(사색이 된 채 굳어버림)


자, 당신의 선택은?


하나씩 고르셨나요? 


이제 당신의 생존 여부를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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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을 선택한 당신  생존!


2번을 선택한 당신 ☞ 생존!


3번을 선택한 당신 ☞ 역시 생존!



축하드립니다.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뭐냐고요?


아, 그렇잖아요. 당신이 어떤 반응을 하든 회사에서 잘리진 않을 테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반응은 실제 야생에서 동물들 사용하는 3가지 생존방식입니다.


첫째는 fight. 맞서 싸우는 겁니다.


둘째는 flight(flee라고도 해요), 도망가는 거고요.


마지막 셋째는 freeze. 굳으면서 얼어버리는 거예요. 죽은 척하기와도 같죠. 



코뿔소와 사자가 만나면 fight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겠죠?


호랑이를 만난 가젤은 심장과 폐가 입 밖으로 나올 듯이 '목숨 걸고' 도망갑니다.


양이에게 잡혀버린 쥐는 죽은 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겁니다. 싸우기엔 체급이 너무 차이가 나고, 도망가려 해 봤자 재빠르고 날카로운 고양이의 발톱에 채일 확률이 아주 높으니까요.



이 동물들의 생존방식은 사실 사람들이 스트레스 상황이나 공포, 두려움에 반응하는 기제이기도 합니다.



적극적으로 가진 모든 에너지를 모아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 공격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을 때 도망치는 반응을 보이는 것, 그 어떤 방법도 가망성이 없을 때는 굳어서 놀라고만 마는 것.


마지막 예시는 드라마에 나오는 뻔한 클리셰가 생각나네요.


오해를 하고 떠나는 연인을 잡기 위해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주인공.


빠아앙- 하면서 달려오는 커다란 덤프트럭을 보고 동공만 확장된 채 몸이 굳어버리는 장면,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사에 다니면서 같은 부서였던 박대리를 부러워했습니다.


상급자가 시킨 일이라도 부당하거나 소화하기 힘든 것에는 fight를 할 줄 아는 동료였거든요.


팀장님이랑 언성 높이면서 미련하게 싸운 건 아니고요.


할 말은 할 줄 아는 친구였어요.


그리고 그건 바로 제가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저는 fight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이에요.


스스로도 답답해요.


제가 사는 집은 1층 필로티에 이웃 주민들과 앞뒤로 이중주차를 해야 하는 구조거든요.


근데 만약 어디 갈 때 차로 가는 게 51% 편하고 대중교통으로 가는 게 49% 편한 상태라고 해봐요?


그럼 제 차 앞에 주차한 이웃에게 쉬는 날 전화해서 차 빼달라고 하기 좀 눈치 보여서(정작 이웃은 싫은 티 낸 적 없고, 친절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니 아무 생각 없어 보임;;)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할 정도예요.


이건 심지어 싸움도 아닌데 남한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거나 귀찮게 할까 봐 눈치 보고 신경 써요.


고치고 싶은 점이고요.


이럴 지경이니 회사에서 상급자에게 뭔가를 말한다? 불가능하죠.


DNA에 아예 그런 선택지는 각인되어 있지 않은 거예요.


한 마디로 저는 '쥐'인 거죠.


저는 쥐인데 사자를 만났을 때 맞서 싸워야 할까요?


아님, 저는 덩치가 산만한 코끼리인데 두더지를 만나면 죽은 척을 하는 게 맞는 걸까요?






오늘 글로성장연구소의 오프라인 모임이 있어 김필영, 최리나 작가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중 필영 작가님의 강연 내용 중 한 꼭지를 간단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끓는점이 다르다는 것. 물은 100℃에서 끓습니다.
구리는요? 2562℃에서 끓는다고 합니다.



작가님의 말에 저는 상상을 합니다.


제가 만약 구리한테 가서,


"야, 너 지금 100℃인데 안 끓고 뭐 하냐?" 하고 시비를 걸면


구리가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지금 당장 끓겠습니다." 하고 끓을까요?


반대로 이번엔 제가 구리입니다.


근데 누가 저한테 와서 "야, 100℃잖아. 눈치껏 끓어." 하면 끓는 게 맞는 걸까요?






나도 동물인데. 사람도 동물인데.


얼어버리고, 도망가는 거, 비겁하고 바보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게 생존 방식 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페더급인데 헤비급 상대에게 뻗대고 달려드는 것보다 도망가고 죽은 척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요?





오늘도 할 말 다 못 하고 속으로만 삼킨 당신.

속이 2562℃인 것처럼 구리구리 새까맣게 타버린 당신.


오늘도 생존에 성공하셨습니다.

그뿐이면 됩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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