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싸이 콘서트 가실 수 있는 분 있나요?

by 김이로

무대 위의 내가 관중들에게 말했다.


"내일 저녁 7시에 싸이 콘서트 가실 수 있는 분 있나요!?"








나는 세미 관종이다. 마음속으론 관심을 받고 싶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다만 실천할 용기가 매번 나는 것은 아니라, 대부분 그 시도는 미수에 그치고 만다.




다시 대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조건 응원단을 할 것이다. 하얀색 목장갑을 끼고 나풀거리는 응원복을 입고,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면 함성소리를 양껏 들을 수 있는 응원단.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청춘에 대한 로망이다. 아니, 관심에 대한 로망이다. 응원단이 아니라면 밴드 동아리에 들 것이다. 두 동아리의 공통점은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다. 모두 나를 보라고!!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에 나는 소심한 아이라고 되어있다. 2학년 때 이 성향이 바뀐다. 김민O이라는 덩치 큰 남자아이가 날 좋다고 쫓아다니는데 키도 체구도 작았던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몇 번 울고불고 쫓아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나를 향한 비뚤어진 순애보(?)를 보여주었던 그 친구에게 나는 어느 날 있는 힘껏 용기를 내서 소리를 꽤액! 지르고 신발주머니로 등짝을 후려쳤다. 그 후로 김민O은 날 따라다니지 않았고, 내 성격은 조금 더 외향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왈가닥이 되어서 동네를 다 뒤집으면서 놀러 다녔다. 남자애들이 내 포니테일 머리를 당기는 장난을 치고 도망가면 나도 지지 않고 따라가서 등짝을 막 패고 다녔다. 내 또래 여자애들이 한 번쯤 가졌을 법한 '조폭마누라' 별명도 명예롭게 얻었다.




수업시간 발표도 곧잘 했다. 손 들고 선생님이 지목하면 일어나서 답이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짜릿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게다가 초등학교 시절의 문제는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기에 대부분은 정답이었다. 정답이 아니라 해도 자애로운 선생님들은 그 대답도 좋은 대답이라며 칭찬해주시는 것이 다반사였다. 일어나서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고! 더할 나위 없다.




대학교에 가서는 별 희한한 패션을 하고 다녔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 킥이지만 누구나 감추고 싶은 싸이월드 셀카 수십 장쯤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때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일단 리본을 좋아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리본 소품을 몸뚱이 어디에 붙이기에도 참 거시기한 걸 생각하면 그때 원 없이 리본 달아보길 잘한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 이유는 아마도 나의 관종력 때문이 아닐까. 눈에 띄고 싶은데 그 방법이 좋지 않았을 뿐..




머리에도 목에도 꾸밀때도 엠티쌩얼일때도 함께했던 나의 리본들...




2012년 8월 10일 금요일, 저녁 7시에 강남역에서 약속이 있었다. 나는 당시 인턴으로 근무하던 회사와 약속 장소가 멀지 않아서 일찍 도착해 친구가 올 때까지 지하상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만 원짜리 티셔츠랑 이천 원짜리 액세서리 등을 신나게 구경해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교대역 방면으로 나가는 출구 근처에 당시 명칭 '문화휴식공간 허브플라자'에 들어가서 쉬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만남의 광장'이라고 이름이 바뀐 듯하다.) '허브플라자'는 가끔 공연도 하고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많아서 약속 시간이 붕 뜰 때 기다리기 좋은 곳이었다.




[출처 : 강남역 지하쇼핑센터 휴식 공간 ‘허브플라자’ <내일신문> 2017.07.28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45719]



마침 금요일이라 그런지, 허브플라자에서 작은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몇 개의 음향 장비들과 조명들이 세팅되어 있고 어떤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차림새와 노랫소리를 들으니 초대가수는 아닌 것 같고 시민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자 MC로 보이는 사람이 마이크를 전달받고 이야기했다.



"네, 다시 한번 큰 박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자, 이어서 다음번에 노래하시고 싶은 분 있으실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오늘 5분 정도 무대로 모셔서 노래 듣고 마지막에 한 분 투표로 뽑아 선물을 드립니다. 지원하실 분 또 안 계신가요? 아, 네, 저기 체크 입으신 여성분 모시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체크 입으신 여성분 나갑니다. 네. 바로 저예요. 하하.



"노래를 뭘로 하시겠습니까?"


"윤하의 기다리다요."



"네, 음향팀 윤하 기다리다 가능한가요?"


음향팀의 OK사인.



"네,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럼 가운데서 준비 부탁드리고요, 노래 반주 시작하면 바로 부르세요. 자 모두 큰 박수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노래를 불렀다. 잘 불렀다고는 안 했다. 분명히. 무대에 서는 게 평생의 꿈이었던 나는 그렇게 강남역 지하상가 허브플라자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진짜 뿌듯했다. 눈에 뭐가 씌었는지 정말 주저하지도 않고 그렇게 손을 들고나가서 노래를 불렀다. 아마 그 공간에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사이의 사람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와. 이게 되네!



덕후가 마음이 벅차오르듯 관종은 마음이 온통 비눗방울로 가득 찬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다. 원래 5명 노래를 들어봐야 하지만 나 이후로는 아무 지원자도 나오지 않아 나까지 3명만 부르고 끝났다. MC는 노래 부른 3명을 다시 무대로 모았는데 그중 첫 번째 사람은 이미 떠나서 두 번째 차례였던 남자와 나만 나갔다. 투표를 하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불러서 그런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뽑아 줬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노래를 잘하지 않는다.



MC는 선물로 내일 오후 7시에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싸이의 흠뻑쇼 콘서트 티켓을 준다고 했다. 어? 나 내일 약속 있는데? 나는 MC가 건넨 마이크에 대고 멋진 수상소감을 했다.



"제가 이런 무대 나와서 노래 처음 불러보는데 정말 기쁘고요. 제가 내일 따로 약속이 있어서 싸이 콘서트는 못 갈 것 같아요.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 내일 가실 수 있는 분 있나요?"



어떤 남녀 커플이 손을 들었고, 나는 박수를 받으며 그 커플에게 콘서트 티켓을 양보했다.




당시 싸이 콘서트 티켓 페이지가 아직도 남아 있어 캡처해보았다. [출처: 인터파크 티켓 홈페이지]




와. 진짜 요즘 말로 무대 찢었다. 엔딩까지 완벽했다. 비록 길거리 1집 싱글곡만 내고 그 뒤에 다시는 컴백하지 못한 가수가 되었지만, 그 무엇보다 성공적이었던 나의 데뷔. 오늘도 세미 관종은 또 다른 무대에 오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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