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고양이 분유와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

by 김이로

지하철 선로에 실수로 떨어진 아이를 가까스로 구해낸 의인. 나 같은 쫄보는 어림도 없다.


장기기증 서약? 너무 원대하다.


헌혈? 큰 결심이 필요하다.


공중화장실 칸마다 문짝 눈높이에 붙어있는 가여운 아기들의 이야기를 보고 후원하기? 생활비 통장을 보면 마음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도움을 거창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거창할 필요가 있나?






"비밀 번호를 눌러주세요"


삑삑삑삑-


퇴근길,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참에 어느 이름 모를 이웃이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다.



마음속에는 갈등이 생긴다.


'아 괜히 마주치기 싫고 혼자 타고 올라가고 싶은데. 닫힘 버튼 누를까? 근데 그러다 저 사람이 후다닥 들어와서 버튼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리면 민망한데...'



이 짧은 순간에 머리가 팽팽 돈다.


결국 민망함 대신 5초 정도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을 택하고 열림 버튼을 누른다.


허겁지겁 엘리베이터에 탄 이웃은 나지막이 고맙습니다 하고 말한다.


짧은 목례로 답하고 서로의 층에 내린다.








"이거 천안 가는 차 맞아요?"


가끔 어르신들이 지하철에서 두리번거리며 물어보신다. 천안행 열차라 쓰여있지만 재차 주변 승객에게 확인을 구한다. 엄마 말로는 나이가 들면 자꾸 깜빡깜빡하고 내가 맞는지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한다. 대답은 어렵지 않다.



"네, 맞아요."



이 네 글자가 어르신에게는 진한 안도감을 줄 수 있다.


가끔 나도 익숙하지 않은 역 이름을 물어보실 때가 있는데, 저도 몰라요 하고 떠나기보다는 20초만 들여서 핸드폰 지하철 어플로 검색을 해 드리자.


나도 나이 들 거고, 나도 키오스크 사용 못 해서 쩔쩔매는 날이 금방 온다. 지금은 키오스크지만 나중에는 진짜 순간이동하는 텔레포트가 나올 수도 있다. 그때 가서 버스도 지하철도 가지 않는, 텔레포트로만 갈 수 있는 장소에 가야 하는데 작동법을 모른다면? 업은 쌓이고 돌아온다. 지금부터 잘 돕자! 돕는데 돈 안 든다.








엄마가 회사에 기증 물품이 많이 들어왔다며 고양이용 영양제와 새끼 고양이용 분유 한 통을 챙겨다 주었다.



우리 집 고양이는 다 큰 성묘라 분유는 필요가 없었다. 공짜이기도 하고 별 것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는 제품이라 필요 없으니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누구한테는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당근마켓을 켰다.





사실 500원은 그냥 명목 상 붙인 가격이었다. 무료 나눔으로 올리면, 좀 세게 말해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안 하고 일단 자기한테 달라고 달라붙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것보다는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싶었다.



인기 품목이 아니니까 연락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만 하루가 지나니 연락이 왔다.


다이소 앞에서 만나기로 해 분유를 들고 갔다. 500원을 주시려고 해서 황급히 말했다.



"공짜예요, 공짜. 아무나 그냥 가져갈까 봐 500원이라 올린 거예요."


"어머 정말요?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가게 근처에서 고양이를 구조했는데 새끼 고양이를 5마리나 낳아서요. 어미 고양이 젖이 부족할까 봐 분유가 있길래 채팅한 거예요."


"그러시구나. 좋은 일 하셨네요."


"새끼 고양이를 다뤄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혹시 둘째 고양이 들이시거나 주변에 새끼 고양이 키울 생각 있는 분 있으면 저한테 당근 채팅으로 연락 꼭 부탁드려요."


"네, 그렇게 할게요. 들어가세요."


유통기한이 몇 달 남지 않아 회사에 기부 품목으로 들어온 고양이 분유.

엄마가 하나를 챙겨 나에게 준 고양이 분유.

버릴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최고의 임자를 찾아 간 고양이 분유.



엘리베이터 버튼은 작지만, 퇴근길 지친 이웃에게 5초만큼의 이른 귀가는 크다.

500원은 작지만, 구조자의 따뜻한 마음과 새끼 고양이의 볼록한 배부름은 크다.


도움은 작지만,

온기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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