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로 Oct 28. 2021

지구별을 위한 작은 차별

매번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지는 못하지만, 종이 슬리브 대신 천 슬리브를.


집 앞 시장에서 사면 스티로폼 배송 쓰레기를 안 만들 수 있지만, 가격이 더 싼 인터넷 배송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배송 테이프를 한 번 더 써서 버리는 방법을.


당근마켓 나눔이 귀찮기는 하지만, 내가 안 쓰는 물건이 누군가에겐 요긴하게 쓰이니까 사진도 올리고 약속도 잡는 작은 수고를.







나는 순도 0.05% 정도의 환경주의자다. 오렌지 주스 함량을 보면 '찐 오렌지 과즙'은 0.05% 들어있고 나머지는 설탕과 오렌지향 향료이다. 결국 그냥 설탕 주스다. 그러니 나도 결국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겉포장은 환경주의자인 척한다는 뜻이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한다.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시작한 사람도 많지만 의외로 지구를 지키는(?) 방법의 일환으로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도 일주일에 단 하루만 채식 식단을 먹는 사람, 상황에 따라 가능할 때에는 채식을 하고 어려운 경우에는 육식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채식주의자가 나타나고 있다. 개인이 먹는 육류 소비를 조금만 줄여도 환경에는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고기를 거의 매일 먹고, 앞으로 당분간은 약한 강도의 채식조차도 할 생각이 없다. 그럼 나는 환경을 해치는 악당일까? 그렇게 보면 좀 섭하다.



내 가방엔 대만에서 사 온 천으로 된 테이크아웃 컵 슬리브가 항상 들어있다. 그리고 자동차 조수석 글로브 박스 안에는 빤딱거리는 노란색 메가커피 슬리브가 있다. 무거운 텀블러를 매일 들고 다니는 수고를 들이지는 못 한다. 가끔 생각날 때 챙겨가는 정도? 그렇다. 나는 일회용 테이크아웃 컵을 선택한다. 하지만 컵 겉에 끼워주는 슬리브는 진짜 너무 아깝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거잖아? 크게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직원이 슬리브를 끼워주면, 다시 슬리브를 빼고 커피만 가지고 나온다. 천 슬리브를 끼우거나 차에 있는 메가커피 슬리브를 끼운다.


 슬리브는 아깝고 일회용 컵은 안 아깝냐고, 둘을 차별하냐고 욕해도 소용없다. 내가 들일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이 이거다. 이 것도 안 하는 사람 많지 않은가!




대만에서 사온 고양이 슬리브. 끈이 달려 있어서 팔에 끼워 들기에도 편리하다.




고기를 살 때 인터넷을 자주 이용한다. 배송비가 붙어도 집 앞 정육점보다 훨씬 싸기 때문이다.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와 그 안에 들어있는 아이스팩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지구의 안위보다 내 통장의 안위가 당장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스팩은 깨끗이 씻어서 말린 후 꼬박 모아서 동네 정육점에 가져다준다. (인터넷에서 사는 것보다 당장 급하게 고기를 사야 해서 '드디어' 동네 정육점을 방문할 때 챙겨간다!) 스티로폼 박스는 몇 개 쟁여 뒀다가 펜션 여행을 갈 때 식재료를 시원하게 운반하는데 쓴다. 회를 좋아하는 나는 질 좋은 회를 뜨러 차로 30분 넘는 거리를 이동하기도 하는데, 그때 얼려둔 아이스팩과 스티로폼 박스를 같이 챙겨가서 신선하게 포장해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스티로폼 박스 겉에 칭칭 감겨있던 테이프를 그대로 예쁘게 뜯어 집 선반 옆에 붙여둔다. 왜? 일반쓰레기 버릴 때 쓰레기 봉지를 단단히 묶을 때도 쓰고, 조금씩 잘라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고양이 털이나 머리카락 같은 것을 제거할 때도 쓴다.



구질구질해 보이나?! 상관없다. 이 쪽 숙녀분께서 지구별에게 보낸 작은 성의입니다..☆ ( ͡° ͜ʖ ͡°)





당근마켓에서 무료 나눔을 하는 일은 상당히 귀찮다. 사진도 찍어서 올려야 하고, 시간 약속도 서로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냥 집 앞 분리수거 쓰레기통에 버리기보다는 열심히 사진 찍어서 올린다. 언젠가는 버려지겠지만 쓰임을 다 하고 버려지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무료로 얻어가는 사람의 기쁜 마음은 보너스다. 지압 훌라후프 가져가신 분, 운동 열심히 하고 계신가요?

 








며칠 전, 서울 장한평역 근처에 있는 '새활용플라자'에 다녀왔다. 재활용 대신 새로운 쓰임새를 찾는다는 의미로 새활용이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가면 새활용플라자 안에 있는 '제로숲'이라는 작은 샵에서 스팸 뚜껑이나 생수병 뚜껑을 견과류 과자 칩으로 교환을 해 준다고 해서 방문했다. 이 역시도 나는 지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맛있어 보이는 견과류 과자 칩이 탐이 났다. 남편과 색다른 데이트도 할 겸. 방문 전 일주일 동안 열심히 탄산수 뚜껑을 모으고 선물세트로 받았던 스팸의 뚜껑을 다 제거하여 모았다. 그리고 밥 냉동용기 2개 분량의 말린 코코넛 칩을 받았다.



병뚜껑을 내면, 견과류 칩을 준다. 칩을 받아갈 다회용기는 미리 챙겨가야 한다.





평소에는 그냥 버리던 쓰레기를 과자 칩에 눈이 멀어 차별대우를 한다. 그리고 과자 칩을 다 받아먹고 나서는 다시 예전처럼 쓰레기를 버린다. 그래도 나는 무자비한 악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 두고보자옹~!'하고 꽁무니를 빼는, 조금 엉성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로켓단과 나옹이처럼, 나도 지금은 완벽하지 않지만 슬리브도 쓰고 테이프도 재활용하고 하다 보면 다음엔 0.07%쯤의 환경주의자가 되지 않겠나옹~?

작가의 이전글 술 취한 사람이랑 뽀뽀해도 안 취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