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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Nov 15. 2021

미쳐 날뛸 창(猖) 노래연습장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44길 8-10. 서울 3,4호선 충무로역 1번 출구와 가까운 이곳에는 미쳐 날뛸 창(猖) 노래연습장이 있다. 솟구치는 1,000용암 같던 나의 20대 열정이 스며들어 있는 미쳐 날뛸 창.










대학교 신입생 1학년 때 학교 동아리에 들었다. 주식 투자 연구를 하는 동아리였다. 열심히 1년을 활동했다. 사람들은 좋았고 배우는 건 재밌었다. 1년을 열심히 활동하고 나서 결론이 생겼다.



'나는 숫자나 금융권 쪽은 아니겠다.'



2학년 개강을 한 직후, 마케팅 분야에 관심이 계속 갔던 나는 대학생 연합 광고동아리를 찾아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가 광고동아리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아리는 모집 기간이 끝났고, 아직 모집하고 있던 다른 동아리에 헐레벌떡 지원했다. 동아리 지원과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다. 다행히 합격이었다. 첫 모임날 우리 기수의 기장과 부기장을 선발했다. 나는 자랑스럽게! 기장에 당선되었다. 기장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같은 기수 동기들이 동아리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챙기고 독려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같은 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지지 않고 각기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모여 만든 연합 동아리기 때문에 중간 이탈자가 많은 까닭이었다. 사람 좋아하고 챙기는 것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 맞는 감투였다.




동아리의 일정은 매주 비슷했다. 운영진들은 1시쯤 모여서 운영 회의를 한다. 일반 회원들은 2시쯤 모여 마케팅팀(기획팀), 카피팀, 디자인팀으로 각자 나뉘어 스터디를 진행한다. 그 후 3시쯤 다 같이 모여서 공지사항 전달 및 광고 리뷰를 한다. 4시 반쯤 모든 스터디를 마친 뒤 가장 중요한 '단사 타임'을 갖는다. 단체사진을 찍는 시간이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들끼리 뒤풀이에 간다. 뒤풀이 1차는 보통 고깃집에 간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대학생들이니 10여 년 전 그 당시 1인분에 5천 원짜리 냉동 삼겹살집에 자주 갔다. 2차는 치킨집이나 흔한 술집, 술국 집 등을 간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회원들이 집에 가고, 이제 얼큰하게 취한 나머지 대여섯의 정예 멤버들끼리 막차를 쿨하게 무시하고 3차를 간다. 바로 미쳐 날뛸 창(猖)으로!




막차가 끊긴 시간, 노래방에 몰려 들어가는 좀비 같은 대학생들을 보는 사장님은 자애롭다. 어차피 막차도 끊겼겠다, 얘네들 거의 매주 오는 얼굴들이니 서비스 시간을 4시간 5시간씩 넣어 준다. 언제까지? 첫 차 시간 때까지. 아직 기력이 남아있거나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먼저 마이크를 잡는다. 나는 보통 뻘겋게 취해 있었지만 기장이라는 책임감에(?) 노래에 맞춰서 열심히 탬버린을 허벅지에다 쳐댄다. 기장이라고 탬버린 쳐야 한다는 법은 없는데... 그러다 눌어붙은 누룽지처럼 노래방 의자 구석에서 잠이 들고, 새벽 4시 즈음 정신이 흐릿하게 든다. 거의 다 곯아떨어져 있거나 아직도 미쳐 날뛰며 노래를 부르는 친구가 있을 때도 있다. 노래방 테이블 위에 뒤풀이 남은 돈으로 샀던 생수를 몇 모금 마시고, 나도 노래를 부른다. 플라워의 애정표현을 주로 불렀던 기억이 난다.




첫차 시간이 다가오면 다 같이 주섬주섬 정리하고 지하철역으로 간다. 3호선이나 4호선,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난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났고, 동아리 친구들은 정말로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 미쳐 날뛸 창에 주로 같이 갔었던 정예멤버들 중 3명은 아직까지 가까이 지낸다. 7명 정도는 내 결혼식에 초대할 만큼 안부 연락을 하고 가끔 만나며 지낸다. 15명 정도는 인스타 등에서 서로의 생존 신고를 확인하며 지낸다. 54명으로 시작한 나의 16기 친구들은 이제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동아리 친구와 카톡을 하고 있다. 미쳐 날뛸 창 기억나냐면서 연락했다.




나의 뜨거운 열정을 함께 공유했던 친구가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지금 우리에겐 미쳐 날뛸 체력은 없지만 약간의 재력이 있다. 어느 나라 돼지 인지도 모르는 오천 원짜리 냉동 삼겹살 대신, 집에 드러누워 '우리 그랬었지' 하면서 엽떡도 시키고 치킨도 시키고 배라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시켜서 와인이랑 먹어치울 수 있다.



그리고,

체력으로도

재력으로도 살 수 없는


추억과 향수가 있다.




자랑스러운 그때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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