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이야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한 남편은 방에 들어가 있었고,
나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늦어지면 배가 고플까 싶어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는데,
옷을 갈아입은 남편이 말없이 식탁에 앉았다.
잠시 후,
“있잖아.”
등 뒤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말투에
나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본능적으로 그의 표정부터 살폈다.
그런데,
“넌, 왜 가계부 안 써?”
남편의 입에서 무심하게 흘러나온 말이
내 마음 한가운데로 툭, 떨어졌다.
차갑게 굳은 그의 표정과 말투에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마치 내가 뭔가 잘못한 사람이 된 것처럼.
“… 가계부?”
나는 되물었다.
“우리가 지금 뭐에 얼마를 쓰는지,
그런 건 정리해 두는 게 좋잖아. 좀 더 체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운함이 먼저 밀려왔다.
그래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천천히 가라앉았다.
내가 아껴 쓰며 지켜온 소소한 기쁨들이
그 말 한마디로 의미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침묵을 바라보던 남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생을 안 해봐서 그런가,
너는 경제관념이 좀 없는 것 같아.”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가계부 쓰셔.”
그 말에 가슴 한쪽이 조용하게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