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욕실에서 걸레를 빨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그 순간, 바닥으로 떨어지던 물방울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마치 주변이 잠깐 조용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고객님, 이번 달 이자가 아직 입금되지 않아서요.”
전화기 너머 은행 직원의 목소리는 매끄럽고 차분했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그럴 리 없는데요.”
내 말은 확신에 가까웠다.
전세금 때문에 받은 대출이었고, 매달 이자는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이번 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미 처리된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전화는 분명 착오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할 만큼 길게 느껴졌다.
“확인해 보니… 대출 금액이 고객님이 알고 계신 것과 다릅니다.”
나는 바로 묻지 못했다.
말의 의미가 천천히, 너무 천천히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전세금 외에 추가 대출이 포함돼 있습니다. 남편분 채무가 함께 묶여 있어서요.”
남편의 채무.
그 단어는 귓가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이자는 남편 통장에서 빠져나갔고, 나는 그 통장으로 이자를 넣었을 뿐이었다.
나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숨이 막혔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내려앉은 것 같았다.
창문을 열었지만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나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믿어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혼의 의미를 내가 잘못 받아들였던 걸까.
함께 산다는 건 서로의 삶을 숨기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부라는 말 안에는 그런 약속이 포함돼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이렇게, 아무 예고도 없이 무너져버렸다.
집은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서 있는 바닥만 서서히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한 손에 쥐고 있던 걸레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남은 물기가 금세 차갑게 식었다.
그 차가움이 눈앞에 닥친 내 현실 같아서, 나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