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서른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한 시간이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오후 두 시,

남편이 반차를 내고 서둘러 들어온 듯했다.


신발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의 다급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방에 들어온 남편은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화장대 의자에 털썩 앉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표정은 무거웠지만, 그 무게가 미안함에서 비롯된 것 같지는 않았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그는 말을 쏟아냈다.


“회사에서 일이 좀 꼬였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목소리는 변명과 체념 사이를 오갔고,

손끝은 끝내 휴대폰을 놓지 못한 채 화면을 켰다 껐다 반복했다.


그의 시선은 나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지만, 따뜻해야 할 빛은 오늘따라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묻지 않았다.

그의 대답에서 기대할 것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배 속에서 아이가 살짝 움직였다.

아주 미세하게, 마치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듯. 그 작은 울림이 내 몸을 깨웠다.


곧 세상에 나올 아이. 아무 잘못도 없이, 오직 나에게만 기대고 있는 존재.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숨을 막히게 했다.


남편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회사 탓, 상황 탓, 어쩔 수 없었다는 말들.


그러나 그 말들은 내 귀에 닿기도 전에 공기 중에서 흩어져 버렸다.


문득, 예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고생을 안 해봐서 경제관념이 부족한 것 같아.”


그 문장이 다시 귓가에 맴돌자,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라기보다는 허탈한 숨에 가까운 소리였다.


실망이었다.

한 사람에 대한 실망,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존재에 대한 실망.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보는 눈이 이렇게 없었나 싶은 깊은 자책이었다.


그 자책은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웠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경제관념이 부족한 게 과연 나였을까.’


그 말을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고, 괜히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보냈던 지난 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런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이 우스웠다.

매거진의 이전글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