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서른다섯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혼자이던 시간이 아이와 함께라는 것.


아이의 얼굴을 가장 오래, 가장 주의 깊게 바라보는 사람도 나였다.


잠들기 전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 물에 젖어 더 또렷해진 속눈썹, 손끝에 달린 새하얀 손톱까지.


매일 조금씩 변하는 그 미세한 움직임들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그 순간들은 너무 작고 사소해서 말로 옮기기 어려웠고, 그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남편은 아이의 변화를 알지 못했다.

묻지도 않았다.


퇴근은 늘 늦었고, 주말이면 잠에 잠겨 아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가끔 일찍 들어오거나 깨어 있는 주말에도, 그는 다른 방에서 게임에 몰두했다.


어떻게 자신의 아이에게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는지, 때로는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일하는 건, 다 너희들때문이잖아. 잠깐 쉬는 것도 이해 못해?"


라는 말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에게는 오롯이 엄마만 있었다.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미열로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젖은 수건으로 온몸을 닦이며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아이의 손이 내 손을 꼭 붙잡을 때면, 그 따스한 온기가 말없이 나를 붙들어 주었다.


그러나 마음이 허해질 때가 있었다.


아이가 처음 뒤집고, 옹알이를 하고, 웃을 때마다 아이의 눈은 늘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가끔 내 마음을 서늘하게 스쳤다.


그럴 때면 우리 둘이어도 괜찮다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일찍 퇴근해 함께 목욕을 시킨 적이 있었다.


아빠의 손길이 낯설면서도 좋은지, 아이의 표정이 유독 밝아졌다.


웃음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컸고, 설레는 눈빛으로 아빠의 손길을 따라 눈을 굴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그렇게 좋은 걸까.


나는 마음을 접을 수 있어도, 아이에게 아빠는 지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 사실이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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