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네 번째 이야기
그 무렵,
엄마는 이미 무언가를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별일 없지?”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물었다.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응, 없어. 다 괜찮아.”
태연한 척했지만,
말끝에 실린 미세한 떨림까지
엄마는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엄마가 찾아왔다.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자
엄마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짧은 눈길이었지만
그 안에는 묻지 않아도 아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들키고 싶지 않았던 속마음을
다 들킨 사람처럼.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운동이라도 시작해.”
뜻밖의 말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둘째는 이제 30개월.
어린이집에 보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지만
아직 말이 늦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첫째 아이 때,
춥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를
베란다에 두었던 어린이집의 기억이
내 안에 여전히 또렷했다.
그래서 자꾸 미뤘다.
조금만 더 옆에 두자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사실은 내 불안을 붙들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위해 하는 말인 건 알았다.
하지만,
“아직 어려서. 엄마가 옆에 있어야지.”
아이를 앞세워 내 상태를 감췄다.
엄마는 더 듣지 않았다.
내 망설임을 끊어내듯
아이 옷을 갈아입혔다.
작은 단추를 채우는 손길이
차분하고도 단단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네가 살아야 아이들도 잘 크지. 안 그래?”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말은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이들을 위해 늘 나를 뒤로 미뤄왔는데,
정작 아이들을 위해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니.
그제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붙들고 있던 무언가를
놓아버리는 사람처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자마자
엄마는 나를 근처 스포츠용품점으로 데려갔다.
형형색색 운동화와 라켓들 사이에서
나는 어쩐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엄마는 배드민턴 채를 들어 무게를 가늠하고,
내 손에 쥐여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좀 무겁네. 이게 좋겠다.”
운동복도 몇 벌 골라
내 어깨에 대보며 거울을 확인했다.
마치 어린 딸에게 옷을 골라주듯 표정이 진지했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울렸다.
하룻밤 머물지도 않고 돌아가면서
엄마는 일 년 치 레슨비를 선뜻 내밀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서 있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때,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말 대신 건네진 온기에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마치
'엄마에게는 기대도 돼.'
라고 말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