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여든두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밤은 생각보다 길었다.


잠을 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엄마가 있을 병실이 자꾸 떠올랐다.

그곳에 혼자 누워 있을 엄마의 모습까지.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이모는 엄마가 잠들었다고 했다.


“내일 병원으로 와. 자세한 이야기는 와서 하자.”


엄마가 입원했다는 말에 놀라

더 묻지도 못한 채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

이제 와서야 후회가 됐다.


다시 전화를 걸어볼까.

하지만 시계는 이미 새벽 두 시를 지나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마음은 계속 그곳에 가 있었다.


엄마는 평소 병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젊은 나보다도 체력이 좋았다.


그런 엄마가 입원을 했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퇴근 무렵,

아이들을 남편에게 부탁하고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정신은 어딘가에 두고

몸만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혼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느냐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엄마는 괜찮을까.’


그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택시 창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별일 아닐 거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먼저 코끝에 닿았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접수대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층수를 누르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긴 복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병실 번호를 하나씩 확인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엄마가 있다는 병실 문 앞에 멈춰 섰다.


문 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문을 열면

내가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용히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그리고 문을 살짝 밀었다.


병실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창가 쪽 침대에

엄마가 누워 있었다.


머리맡에는 작은 물병과

접혀 있는 안경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옆에 앉은 이모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엄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보자

평소처럼 환하게 웃었다.


“우리 딸, 왔어?”


그 말이

가슴 어딘가에 툭 떨어졌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엄마를 바라보다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엄마…”


입을 열었지만

그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괜찮은지,

어디가 아픈 건지,

왜 입원까지 하게 된 건지.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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