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한 번째 이야기
남편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나는 오래도록 다짐해 왔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무심함과 상처들은
쉽게 무뎌지지 않았고,
마음 깊은 곳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순간이 와도,
그에게만큼은 의지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혼자 버티는 편이 덜 아프다고,
그렇게 믿으면서.
그 믿음은 꽤 오래 나를 지탱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조금만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이미 너무 지쳐 있었고,
오래 버텨온 끝에
한계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 세상에 완전한 혼자라고,
도움을 받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믿으며
모든 것을 속으로 삼켜내던 나날이었다.
만약 그 순간
그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 시간을 건너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금요일 저녁,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은 미역국이 먹고 싶어.”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부엌으로 향했다.
미역을 불려야겠다고,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떠올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내가 끓일게. 넌 좀 쉬어.”
싱크대 문을 열려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돌아봤다.
남편이었다.
“뭐라고?”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되묻듯 말했다.
“나 미역국 잘 끓이는 거 알잖아.”
알고 있었다.
내 생일이면
그는 연례행사처럼
미역국을 끓여주곤 했다.
마치 큰일을 해낸 사람처럼
뿌듯해하던 얼굴,
그리고 해가 갈수록
조금씩 나아지던 맛까지도.
그런데도
이상하게 낯설었다.
도와주겠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 일을 대신하듯 나서는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
“… 괜찮겠어?”
“어머니도 내가 끓인 거 더 좋아하실걸?”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소매를 걷어 올리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끝내 아무 말도 보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