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아흔두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그 후로 한동안

부엌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이어졌다.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

고기와 미역을 볶는 소리,

국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소한 미역국 냄새가 집 안에 퍼졌다.


그날의 미역국은

생각보다 훨씬 정성스러웠다.


결과는 그의 말대로였다.


엄마는 그 국을

마치 보약처럼 천천히 떠먹었다.


건더기는 넘기지 못해

입에 들어가는 건

국물 몇 숟가락이 전부였지만,


사위가 끓여주었다는 말에

“맛있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 얼굴이 어찌나 환하던지,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묘한 기분이었다.


일 년에 하루,

그는 내 생일에 미역국을 끓였다.


그것으로 남편의 도리를 다했다는 듯,

평소의 나는 그의 일상에서 빠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끓여준 미역국은

늘 입안에서 겉돌았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밀려났다.


엄마 입에 들어가는

몇 숟가락의 국물이

그저 고마웠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아이들을 대신 챙겨주고,

내가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일들.


사소한 행동들이었지만

내게는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작은 틈이 되어주었다.


어느 주말에는

내 얼굴이 유난히 어두워 보였던지,

그는 아무 말 없이

아이들과 나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바다로 향했다.


차창 너머로 펼쳐진 바다는 잠잠했고,

우리 역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파도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모래 위를 뛰노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시간만큼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결심했었다.


엄마를 살리고 나면

이 결혼을 끝내겠다고.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아도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던 생각,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마음.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던

익숙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있는 날들,

엄마 옆에서 조용히 손을 잡아주던 순간들.


그 장면들이 하나둘 쌓일수록

그 단단했던 결심은

조금씩 흐려졌다.


여전히 내 안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손을 뻗으면 닿지 않을 만큼

멀어져 있었다.


지워진 것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닌 채

그저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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