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아흔세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의 빛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햇살처럼 반짝이던 눈빛은

늦은 오후,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처럼 옅어졌다.


나는 그 변화를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느꼈다.


겨울이 오기 전,

나뭇잎이 소리 없이 떨어지듯

엄마의 시간 역시

조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아차린 뒤로,

나는 매일 같은 말을 되뇌었다.


“사랑해.”


주문처럼,

의무처럼,

어쩌면 내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한 말처럼.


어떤 날은

엄마가 이미 잠든 방 안에서도

그 말을 속삭였다.


고른 숨이 흐르는 어둠 속에서,

그 말이 닿는지, 들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사랑해’라는 말은

점점 무게를 잃어갔다.


더 이상 특별한 고백이 아니었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여느 때처럼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때,

엄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사랑해. 영원히.”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고,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사랑해’와 ‘영원히’가

함께 놓일 수 있는 말이라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그것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사랑이 ‘영원히’에 닿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눈물이

아무 예고도 없이 쏟아졌다.


아무리 애써도

엄마의 사랑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아는 것과

진짜로 깨닫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었다.


엄마의 사랑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바다 같았다.


부서지듯 요동치는 내 감정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잔잔히 흐르는 그 사랑 사이의 간극이

너무도 선명했다.


엄마는 잠시 숨을 고르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리 딸, 그동안 고생 많았어.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 말은 마치

작별을 앞둔 인사처럼 들렸다.


그리고 한참 뒤,

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집에 가고 싶어.”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과,

끝내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붙잡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선명하게 다가왔다.


매거진의 이전글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