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아흔다섯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오래전, 아빠가 떠난 후

내가 매일같이 울던 그때.


엄마는 자신의 아픔을

내 앞에서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품에 안고

말없이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엄마의 품에서

나는 충분히 위로받았고,

다시 설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돌아가시기 전,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엄마랑은 충분히 시간 보냈잖아.

이번엔 괜찮을 거야.”


하지만 엄마가 떠난 뒤,

그 말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엄마가 있던 자리는

보이지 않는 무게가 되어

나를 천천히 짓눌렀다.


잠이 들면 가위에 눌리고,

눈을 뜨면

집 안 곳곳에서

신음을 참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은 텅 비었고,

하루를 버티는 일은

매번 겨우 통과하는 시험 같았다.


괜찮아지고 싶었다.


나는 이제 스물한 살 여대생이 아니라

서른일곱, 두 아이를 둔 엄마였다.


더는 엄마가 아프지 않으니, 그거면 됐다고.


나를 다독일 줄 아는 어른으로

똑바로 서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괜찮아지는 건지,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기분 좋은 얼굴로

말을 꺼냈다.


“이번 주에 가족 모임 있는 거 알지?”


그 말에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마치 이 집에서 일어난 일이

이미 끝난 일이라는 듯.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직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 속에서 아무 일도 없는 듯

웃을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렇다고

표정을 지우면 걱정을 살 테고,

그것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번엔, 당신이 애들 데리고 다녀오면 안 될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목소리는 금세 날카로워졌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자,

남편의 표정이 굳었다.


“왜 대답이 없어?”


그 불쾌함이 잔뜩 묻은 목소리에

나는 지금 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떠올려보았다.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그가 수긍할지,

두서없이 흩어지는 생각들을 정리하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또 뭐가 문제냐'는 냉랭한 시선.


그제야 알았다.


그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에게 중요한 건

내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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