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일곱 번째 이야기
“넌 이제부터
종갓집 맏며느리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신혼여행지에서
가족들 선물을 고르던 순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다시 들려오자,
묻어두었던 장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몸살이 심해 서 있기조차 힘들었던 날,
나는 시댁에 가기 전 병원부터 들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짧게 잘랐다.
“부모님 기다리셔. 일단 집으로 가.”
더 말할 틈도 없었다.
나는 거의 끌려가듯 시댁에 도착했고,
오한에 떨고 있는 나를 본 시부모님은
놀라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아픈데, 병원부터 갔어야지.”
그 당연한 말이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더욱 선명하게 남겼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시댁 행사를 앞두고
심한 결막염에 걸렸던 날,
한쪽 눈이 붉게 부어오르고
눈을 제대로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시댁 행사부터 챙겨야 했다.
안대조차 하지 못한 채
흐릿한 시야로 식구들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그 모습을 본 시댁 식구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차라리 쉬라고,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정작 나를 그 자리에 세운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시부모님은
나에게 큰 부담을 주려는 분들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그가 그렇게까지 몰아붙이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 친정 역시 종갓집이었고,
그 무게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오래된 주문을 외듯
그 말을 내게 던졌다.
만약 평소였다면
수긍했을 것이다.
실제로 여러 번 그랬듯이.
하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내 안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무너져 있었다.
그의 눈에는
지금의 내가
그저 ‘몸은 멀쩡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단순한 기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어디선가 금이 가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는,
그 순간에도
망설임 없이 같은 말을 꺼냈다.
숨이 막혔다.
그 말이
내 목에 걸린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줄이
점점 조여드는 감각.
그와 결혼한 이후
한 번도 풀린 적 없던 그것이
그날따라 유독 선명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