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목표가 아닌 과정이 될 때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스무 살 때 나는 신우석 감독처럼 훌륭한 아트디렉터가 되어 세계 영상 그랑프리를 제패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스물다섯에 졸업만 하면 나는 내가 연봉을 고액으로 받으면서 부모님과 할머니, 친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서른이 넘으면 영화 같은 사랑과 토끼 같은 자식들, 서울에 마당 딸린 집 한 채는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꿈이 하나씩 피고 또 하나씩 질 때마다 나는 한 번씩 시들어 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어난 의미는 무엇이 ‘되기‘ 위한 삶인가
(What to become)
아니면 태어났기 때문에 그 의미를 ’ 찾는 ‘ 삶인가.
(What it means to be)
전자를 쫓다 보면 내 인생은 번번이 ’ 실패’한 게 되는데.
후자를 쫓으면 내 인생은 빈번한 ‘성취’가 되고.
그러니 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선 안된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대통령도 되고 싶어 했다가.
천사소녀 네티도 되고 싶어 했다가.
계속 계속 바뀌면서 형태가 변화하는 게 당연한 건데.
새옹지마의 일화처럼, 다리가 부러져서 전장에 안나가
목숨을 구한 고전의 주인공처럼. 어떤 불행이 꼭 나쁜 일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데.
꿈은 그냥, 가지고 있고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인데.
그냥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연료일 뿐
그게 인생의 목표가 돼서 날 무너지게 하면 안 되지.
그 생각을 하니까 집착이 내려놔졌다.
내 것이 아니라면 무슨 수를 써도 내 것이 안되지만
운명이라면 머리가 깨져도 내 손에 들어오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