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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N수생이 봤으면 하는 일기 <나의 삼수일기>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모두 수능을 마주한다.

by Nos

INTRO


30살이 다 되어버린, 수능을 친 지 10년도 넘은 제가 <나의 삼수일기>를 보게 된 계기는 너무 가볍습니다.

그냥 밀리의 서재에 만화책 코너를 보다가 동글동글한 그림체가 귀여워서 한 번 보게 되었는데, 내용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저도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하지 않고 수능을 망쳤지만, 재수는 하지 않고 그대로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다만, 군대를 제대하고 편입을 하다 보니 남들보다 1년 늦게 졸업을 하게 되었네요.

저는 사실, 인서울은 어림도 없었고 지거국 정도의 편입을 했었기에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편입영어라는 아득한 시험을 준비한 게 아니라, 토익 성적과 전공 공부만 하면 됐었거든요.

토익 성적을 준비해 놓고, 전공과목 필기시험만 준비하면 되는 것이기에 부담이 덜 했습니다.

범위는 좀 방대하긴 했지만, 수능에 비하면 오죽할까요.


상대적으로 쉬웠던 수험생이었던 저였기에, 다른 사람들의 수험생활이 어느 정도인 고통이었는지는 알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삼수일기>를 보니 재수한다는 게 이 정도이구나를 느꼈네요.

겉에서 봤을 때는 그저 열심히 공부했구나 싶겠지만, 그 과정을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만화로 표현된 <나의 삼수일기>는 만화가 가지는 장점인 시각적 연출을 통해, 어쩌면 글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작가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약간은 처절하면서도,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재수와 삼수의 과정.

그 속에 담긴 몇몇 감정들과 문장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책 속의 문장들


죄책감. 나 자신을 향한 알 수 없는 역겨움에 무작정 밖으로 나가 도망쳤다.
도망쳤다. 이 현실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그 과거로부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인생은
너는 죄인이야. 네 인생을 낭비하고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아버린 죄인.


수능 성적표를 받은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보고 작가님은 죄책감에 휩싸여 무작정 밖으로 나가 달렸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부모님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에게, 아버지가 우는 모습은 얼마나 충격이었을까요.

저의 어머니도 분명, 제 앞에서 울진 않으셨지만 뒤에서 숨죽여 우셨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립니다.

수능이 인생을 결정하지 않고 학벌이 성공을 결정하지 않기는 하지만, 수능을 친 학생들이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까요? 그때에는 수능이 정말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니까요.


저도 편입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항상 가슴에 못이 박혀 있는 듯한 느낌으로 살았습니다.

어머니 얼굴을 보기 힘들었고, 말수도 적어졌으며 인생을 즐길 자격이 없는 죄인의 심정으로 제 소중한 청춘을 보냈습니다. 그랬기에, 더욱 공감이 갔던 문장입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가자. 반드시 성공할 거야. 내가 버린 시간들을 위해서라도. 이건 나와 부모님을 초라하게 만든 세상을 향한 나의 반항이야. 나의 기준과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꼭 될 거니까.


모든 N수생이라면 공감할 법한 감정이죠?

우리가 좋은 대학을 가려는 이유는 정말 나 자신만을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뒤에서 우리를 묵묵히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부모님을 위해서죠.

꼭 좋은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가야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선은 좋은 대학밖에 가는 거 말고는 별다른 수단이 없으니까요.

꼭 수능이 아니더라도,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세상에 어떤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내용인 거 같습니다.

내가 강인한 울타리가 되어, 그 울타리 속에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일 테니까요.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말, 들어봤지? 그건 맞는 말이야. 좋은 대학을 가도 누군 실패하고, 대학을 못 가도 누군 성공하잖아. 대학보다는, 네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야. 어떻게 보면 재수라는 건, 너의 그릇을 늘리는 작업이지. 처음 왔을 때랑 비교하면 넌 엄청나게 변했어. 느꼈을진 모르지만, 너의 그릇은 이미 누구보다 커졌는 걸.


재수학원의 선생님이, 작가님 보고 해준 얘기입니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는 '결과'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 대학에 가기 위한 '과정'도 중요하다는 뜻이죠.

과정에 최선을 다했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인생을 잘 살아갈 거라는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어느 정도 공감이 힘들고 약간 짜증이 나기까지 하는 말이죠?

세상은 어찌 됐건, '결과'만 알아주는 세상이며, 그 '결과'를 위해 '과정'이 존재했는데 무조건 '결과'가 잘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반박이 떠오를 테죠.

이 말은 논리적으로는 반박할 수밖에 없지만, 그 감정을 직접 느껴보고 경험한 사람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제 편입 경험담으로 이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도 대학교 2학년때부터 편입 수험을 준비했지만, 공부 습관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고 저의 무지함과 부족한 용기로 1년을 더 준비했었습니다. 1년을 더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는 부족하지만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여 편입 시험을 치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치는 시험이었기에, 전날에 학교 근처의 모텔에서 숙박을 하면서 마지막 남은 공부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공부가 손에 더 이상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복습을 끝내고, 한 번 더 책을 전반적으로 훑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냥 책을 덮게 되더군요. 그렇게 덮고 나서, 갑자기 이상한 생각과 감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의 내면이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내일 시험을 망치더라도 괜찮을 거야. 뭐 어때?'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다시, 내 인생에서 도망치기 위한 안 좋은 버릇이 나오는구나. 나는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험에서 도망치기 위한 자기 합리화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결과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마지막 공부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워서 이 알 수 없는 생각과 감정은 도대체 뭘까 고민을 했지만, 어렸던 저는 잘 몰랐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시험을 쳤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그 감정과 생각이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시험을 망쳤더라도 저는 괜찮았을 거고 죄책감에서 해방되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편입을 위해 달려왔던 나의 과정들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고, 그 성장한 나 자신은 인생을 잘 살아갈 근거 있는 자신감을 확립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편입을 위해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성실하게 수험생활을 끝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앞으로도 잘 살아갈 자신감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입니다.

그 자신감과 나의 그릇은 고작, 편입 시험의 결과로 무너져 내리는 허술한 모래성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씩 벽돌을 쌓아 올린, 나의 자랑스러운 성채이죠.

그렇기에, 편입을 망쳤다 하더라도 그 성은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탱해 주며 다른 방향으로 내 인생을 이끌어주었을 겁니다


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감정은, 최선을 다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일 것입니다.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마지막에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는 감정이 드는 모순.

결과를 바라지 않고 그저 과정에 최선을 다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미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후회와 미련도 남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자신을 불태웠다면, 불순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나는 어떤 찌꺼기도 남기지 않은 채, 내 앞에 펼쳐진 길을 힘차게 걸어갈 테니까요.



END


대학진학률이 높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어찌 보면 '성인식'과 다름없는 수능은 많은 이들을 괴롭게 합니다.

누군가는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바로 진학하거나, 대학 진학을 포기한재 취업전선에 바로 뛰어들기도 하죠. 하지만, 다시 한번의 기회를 잡고자 N수를 시작하게 되는 수험생들도 많습니다.

그 수험생들은 겉에서 봤을 땐 그저 흘러가버린 1년이지만, 그 1년을 살아낸 수험생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 힘듦을 귀여운 그림체로 표현한 만화가 바로 <나의 삼수일기>였습니다.

물론, 그 힘들고 절망적인 감정은 그림체로 순화할 수 없었지만요.

2025년의 새해가 밝은 1월.

어쩌면 N수를 결심하게 된 청춘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N수생 여러분들.

<나의 삼수일기>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더 용기를 얻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냉혹하지만, 그 냉혹함 속에서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능을 이겨내고 펼쳐지는 청춘은 분명, 추웠던 겨울만큼이나 따뜻하고 찬란한 봄일 테니까요.


이상으로 <나의 삼수일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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