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여교사의 투쟁.
이전에 스토너 소설을 리뷰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교수 '스토너'의 삶을 다룬 소설로, 주위의 핍박과 억압에 맞서긴 했으나 운명에 굴복하여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지 못한 주인공의 삶을 다룬 소설이죠.
<지켜야 할 세계>도 이와 유사한 소설입니다. 작가님이 후기에서 밝혔 듯, 스토너 같은 소설을 쓰고 싶어 쓴 소설입니다. 그래서, 주인공 '윤옥'의 삶은 스토너와 많이 흡사합니다.
다만, 미국의 교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사라는 점,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점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지만요.
문학과 언어학을 좋아하는 두 주인공들은 이상하게도 주위에서 핍박을 받게 되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의연한 자세로 하나씩 대처해 나갑니다. 하지만, 결국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한 채 남은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어딘가 모르게 먹먹한 이 소설은 <스토너>를 좋아하신 분들이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어학을 사랑하는 고등학교 여교사 윤옥이 있습니다.
그녀는 뇌병변장애를 가진 지호라는 남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고도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내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국내 최고의 대학의 사범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녀는 그 시절의 운동권의 삶에도 일부 침투하고 교사로 살면서도 '야학'에도 힘을 쓰긴 하나, 순수하게 학자로서의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학문을 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삶으로도 행복한 그녀이지만, 그녀에겐 지켜야 할 세계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학급, 야학, 가족, 학교에서의 명예 등등 우리가 으레 지키고 싶어 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삶은 그녀에게 가혹하리만큼 모질게 굽니다.
윤옥이 바라는 그 어떤 것들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가혹한 운명의 굴레는 그녀를 서서히 무너뜨리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삶을 이어나가며 투쟁해 나갑니다.
그 투쟁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커다란 슬픔을 선사하더라도 말이죠.
읽을 때는 딱히 몰랐는데, 작가님의 후기를 보고 나니 '스토너'와 정말 빼닮은 소설이었습니다.
순수하게 학문을 하고 싶어 하는 학자인 인물들이, 운명의 굴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자신의 삶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빼앗기는 비극이라는 점에서요.
그리고, 그 부당함을 선사하는 인물들에 정면으로 치고박지 못하고 회피하다가 싸움에서 지는 흐름까지.
그들 나름대로 투쟁을 하였지만, 상황은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게 흘러가는 이 흐름은 삶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듯합니다.
선한 윤옥과 스토너는 삶에서 많은 비극을 겪지만, 악인들은 승승장구하며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분노가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윤옥과 스토너에게는 분명, 더 나은 삶을 위해 도망쳐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각자가 현재의 환경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뿌리칠 수 없기에 도망치지 않고 버티는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독자의 입장에선 도망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이 도망치지 않는 것 또한 이해가 되는 상황이기에 그저 슬프게 관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에서 부조리한 일을 겪게 될 때, 우리 개인은 정말 무력하리만큼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걸까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현재의 이곳이 지옥이라면 도망친 곳은 낙원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지켜야 할 자신의 세계를 위해서, 도리어 자기 자신은 지키지 못하는 가혹한 운명을 담은 이야기.
<지켜야 할 세계> 리뷰였습니다.
언젠가는, 도망쳐서 행복한 삶을 맞이한 주인공의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