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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달빛을 보며 살았던 겨울

토익을 졸업함과 동시에 또 다른 짝사랑에 입학하다.

by Nos

기말고사도 끝난 12월의 겨울.

원래라면 편입 원서를 넣고 전공공부를 마무리하느라 바쁜 시절이었겠지만, 1년을 유예한 나는 여유로웠다.

이 여유는 원래 있어서는 안 되는 여유였기에, 나는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토익 하나 때문에, 1년을 날려버린 나는 솔직히 많이 부끄러웠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토익 900점 돌파는 그 당시의 나에게 있어 단순한 고득점만이 아니었다.

공부로 아무런 학업적 성취를 얻지 못한 부끄러움을 이겨내기 위함이자, 새로운 나로 태어나기 위한 탈바꿈의 기회였다.


그렇다. 토익은 더 이상 그저 토익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승부가 되었다.

나는 이 승부를 위해, 기꺼이 동굴 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근로장학은 방학중에도 여전히 편했다.

별다른 업무 없이 월 100만 원을 넘게 벌면서도 다른 학과의 학우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1~2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방학 때도 근로를 하였고, 전부 주 40시간을 꽉꽉 채워서 일을 했다. 학기 중에 이미 친해진 학생들은 방학이 되자, 하루종일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핸드폰으로 오락을 하면서 지냈다.


나는 그럴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토익 900 하나 넘기지 못해서 내 청춘의 1년을 날린 한심한 놈이지 않은가.

얘기를 나누며 청춘을 즐길 자격 따위 없었기에, 나는 죄책감과 한심함을 연료로 삼아 맹렬히 공부했다.


내 자리는 토익 문제집들로 가득 찼고, 내가 걷는 거리는 영어 단어장이 함께했다.

그 문제집과 단어장은 고스란히 나의 장벽이 되어 다른 학생들의 접근을 막았다.


나의 밤은 도서관으로 채워졌으며 어두운 귀갓길은 가로등이 나를 배웅해 주었다.

내가 걷는 거리는 햇빛보다는 달빛이 더 많았다. 은은했지만 서늘했던 공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의 나는, 햇빛의 포근함보다는 달빛의 서늘함이 더 편했다.


2019년의 새해가 높이 떠올랐을 때도, 나는 달빛에 숨어있었다.

1년을 버리게 된 나에게 2019년의 새해를 밝게 맞이할 자격 따윈 없었으니까.

새해 목표도 세울 필요는 없었다. 2015년부터 내 목표는 동일했으니까.


밤이 점점 짧아지면서, 달빛도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하는 1월의 마지막.

나는 토익 시험을 쳤고, 달은 내 소원을 이루어주었다.

910점을 받으면서 내 토익은 그렇게 끝이 났다.




드디어 모든 응시자격이 갖추어졌고, 나는 전공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 2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약 11개월.

이 정도면 사실, 공부 시간은 많은 편이다.

나는 뭐 그렇게까지 대단한 대학에 진학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익을 어느 정도하고 나니, 나는 갑작스러운 여유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새 학기가 시작되기까지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은 좀 쉴까 생각했다.

중요할 때마다 게으름을 피워서 시간을 날리긴 했지만, 평상시에 제법 성실하게 공부를 해왔으니 한 달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정말로, 이번에는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저번과 다르게 공부 습관이 어느 정도 잡혔으니 복학하면 열심히 하지 않을까?


나는 고민했다. 2월에 한 달 쉬어도, 3월부터 다시 공부할 자신은 있었다.

또다시 손을 놓아버릴, 그만큼 한심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동안 도서관을 다니며 잡아놨던 나의 생활습관은 고작 한 달의 휴식만으로 다시 무너질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정말 맘 편하게 놀면서 쉴 수 있을까?

오히려 더 불안해하지 않을까? 공부를 안 하는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있을까? 정말로?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1년을 날린 주제에 토익 그거 900점 넘겼다고 한 달을 휴식한다니?

그렇다고 전공 공부를 일찍 시작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면 도대체 무얼 해야 하나?

정답은 또 토익이었다.

910점을 받긴 했지만, 사실 이 점수는 약간, 아주 약간 아쉬웠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엔 간당간당한 점수였기 때문이다.

20~30점만 더 올리면 확실하게 서류도 통과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점수로는 자칫하면 서류도 탈락할 위험이 있었다.


910점을 받은 실력이면, 조금만 더 하면 점수가 더 높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900 후반대면 몰라도, 900점 초반의 내 실력은 시험 난이도나 컨디션, 운에 따라 950점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가능할 것 같았다.

토익을 아예 950점까지 찍어버리면 토익으로 편입할 수 있는 대학 중에서 내가 지원 못할 학교는 없을 것이다. 나는 공대 쪽이었으니 990까지 받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2월 말까지 토익을 한 번 더 해보기로 했다.

진짜로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나는 다시 도서관을 다니며 토익 공부를 시작했다.

900점을 넘긴 실력이 되면, 좀 지긋지긋하긴 하지만 어려워서 하기 싫거나 이런 건 없었다.

웬만한 건 다 들리고 읽을 수 있는 실력이니까.


정말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열심히 하고 나니 2월 말이 성큼 다가왔다.

나는 다시 한번 토익 시험을 치렀고, 결과는 3월 초에 나왔다.

점수는 충격적이었다.

915점.


사실, 1월처럼 혹독하게 공부를 하진 않았다.

그 정도로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점수가 오를 만큼은 공부했다.

매일매일 모의고사를 풀고 단어장을 보는 기본적인 공부는 다 했는데.. 한 달 동안 오른 점수는 고작 5점이었다. 915점이라는 점수를 받고 나니, 나는 정말 더 이상 미련 없이 토익을 포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서울 상위권 대학 안 되면 뭐 어때? 그냥 지방국립대나 가자.

애초에 충분한 토익 점수였잖아? 공부 습관 안 무너지게 열심히 도서관 다닌 걸로 만족하자.


계속해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돌려보려 했지만,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비참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거지 하면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런 믿음도 무너졌다.

남들보다 더 많이 해야, 겨우 본전을 치는구나.


뭐 그래도 괜찮았다. 비참하고 실망스러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이 한심하진 않았으니까.

햇빛보단 달빛과 별빛을 보며 지낸 나의 겨울.

햇빛의 따스함보단 달과 별의 서늘함을 벗 삼으며 공부했던 나의 노력은 훗날 분명 귀한 자산이 되어 줄 테니.


겨울방학 동안 확실하게 토익을 졸업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3월의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다시 짝사랑이 찾아올 운명은 깨닫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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