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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성큼 다가온 편입시험

그만큼 밀어낸 사랑.

by Nos

2학기가 다가오면서 내 마음은 여유가 없어졌다.

공부를 많이 하긴 했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완벽하게 할 수 없는 게 공부니까.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면서 편입이 다가오는 것이 점점 실감이 났다.

드디어, 수능이 끝날 때부터 가졌던 나의 죄책감과 한심함을 만회할 수 있겠구나.


사실, 여름의 무더위 때문에 내 의욕도 약간 꺾였었다.

편입은 아직도 너무 멀어 보였고, 당장의 무더위와 한창 짝사랑하던 그녀 때문에 마음은 갈팡질팡 하던 시기.

공부를 손에 놓은 것은 아니지만, 의욕이 약간 꺾인 만큼 집중력도 떨어졌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9월에 가끔씩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의 향기는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래, 뭐 때문에 이렇게 1년이나 시간을 허비했겠는가?

그놈의 학벌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주눅이 들었고 어머니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마음속에는 항상 뜨거운 열등감과 죄책감이 나를 불태우고 있었는데, 바깥의 무더위가 내 속의 불덩이를 잠깐 잊게 했던 것 같다.


선선한 날씨와 더불어 내 마음의 뜨거움은 다시 불타올랐다.

이런 1년을 또 반복할 자신은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이제 진짜 전력질주를 시작해야 했다.


짝사랑도 슬슬 마무리되어 가는 이 시점에, 운명은 얄궂게도 다시 나에게 새로운 사랑의 기회를 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2학기에도 여전히 생활비는 필요했기에, 나는 정보전산실 알바를 계속하고 있었다.

일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정보전산실 알바는 어느새 근로장학생들에게 소문이 퍼질 대로 퍼져있었기에 경쟁률이 치열했다.

이미 했던 사람들을 뽑아주는 경향이 강했기에 새로운 사람들이 더욱 들어오기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꽤나 많이 들어왔다.

학점 4.5 만점자들도 수두룩했고, 못해도 4.3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이전학기와 다르게 활기찬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소위 "인싸"들.

순식간에 친해진 사람들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떠들썩했다.

2년 동안 근로장학을 하면서, 이 정도로 떠들썩한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학점이 높으면 보통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짝사랑했던 두 여자도 근로장학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관심밖이었고 내 집중은 오직 책으로만 향했다. 시험기간도 아니고, 심지어 시험이 끝나고도 책을 펼쳐서 조용히 구석에서 공부만 했다.

이런 나의 모습은 특히나 인싸들이 모인 곳에서 굉장히 특이하게 보였던 것 같다.


사람들이 너무 궁금해해서, 나는 이렇게까지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했다.

그런데, 편입이라는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걸까? 어찌 보면 여기 있는 대학이 별로 안 좋아서 떠나려는 건데, 이곳 대학을 만족하고 다니는 사람한테 실례가 아닐까?


그럼에도, 사람들이 궁금해하니까 결국 말을 해주었는데 반응은 대체로 괜찮았다.

대부분은 다들 속으로 공감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몇몇 사람들은 말만 안 했을 뿐 실제로 편입을 준비하고 있었을 테니까.


편입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지만, 학교 생활은 여유로웠다.

전공은 이미 들을 만큼 다 들은 상태였기에, 2학기는 교양으로 최소학점만 채워서 수강신청했기 때문이다.

영화와 관련된 교양을 들으면서 지친 마음을 휴식하고, 수업을 거의 들을 필요가 없는 교양은 뒤에서 몰래 자습했다. 교양도, 근로도 없는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시간이 넘쳐흘렀다.


그 넘쳐흐르는 시간 속에, 나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내가 가려는 대학들은 아예 지역을 옮겨야 하기도 했고,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놨어도 기간이 촉박해질수록 사람 마음은 불안하기 마련이니까.


날씨가 점점 쌀쌀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 누구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무렵에, 다른 근로학생이 나에게 호감을 표시해 왔다.

그때의 나는 그걸 알아차릴 정도로 눈치나 여유가 있지 않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호감 표시였던 거란걸 알게 되었을 뿐.


11월 쯔음부터 호감을 표시해 왔지만, 나는 아예 신경을 쓰지 못했다.

분명 충분히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공부는 끝이 없었고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기 때문에.


내가 편입 공부하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고, 그녀도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듯했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지 않았고, 나는 그저 바쁜가 보다 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싱거울 정도로 그저 스쳐 지나가버린 그녀는, 지금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그때 같이 근무했던 근로장학생과 함께 말이다.


내 청춘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든 편입.

그 편입 시험을 드디어 2020년 1월에 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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